겨우(?) 50불에 공존의 의미를 담아보았던
산책길에 마주치는 강아지들 중 귀엽지 않은 친구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삐 움직이는 네 다리의 리듬은 경쾌하고 바람을 느끼는 녀석들의 작은 얼굴에는 산책의 기쁨이 넘쳐흐른다. 나는 이미 맨발 걷기의 시원함을 알고 있기에 작은 맨 발바닥에 전해져 올 기분 좋은 촉감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가끔 그 귀여움에 마음을 뺏겨 집사의 신분을 잊은 채 강아지를 만지러 다가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귀엽고 작은 강아지들을 선호하는 인간들 때문에 펫샵이 성황 중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불편해지기도 한다. 작고 귀엽게 생겼다는 까닭으로 강아지 생산 공장에 갇힌 채 죽을 때까지 임신하고 출산하게 하다니! 새끼 강아지는 낳는 즉시 분리해서 팔아넘기고,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계속 임신하게 하는 인간들이라니. 악마가 아니고선 참으로 믿기 힘든 사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는 마음이 복잡하다.
발리에도 많은 개들이 있었다. 그들의 느낌은 한국의 개들과는 사뭇 달랐다. 첫 마주침은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하던 날 숙소로 달리는 밤의 도로 위로 뛰어들던 검은 개로부터였다. 그 후 요가원 가는 길에도, 마사지받으러 가는 길에서도. 떠돌이 개들과의 마주침은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우붓에서도 그들은 그렇게 다른 생존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지구 위에 터전을 잡은 생명체이니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날도 코코슈퍼에 들러 맛있는 열대 과일과 통밀빵을 사 숙소로 오는 길이었다. 어느 상가 앞 주차된 차바퀴 아래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낮잠을 청하려는 건지, 허기로 늘어져있는 건지 짐작하기 어려운 자세였다. 덩치가 있었기에 주저했지만 그렇다고 뭐라도 먹게 하고 싶은 내 의지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처음엔 겁이 나서 그냥 지나치려고도 했다. 하지만 몇 발자국을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통밀빵을 먹기 좋게 조각을 내어 준다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건 인간이 좋아하는 그 비건 빵 조각들을 그 녀석이 먹을지, 말지보다는 그 순간 일종의 내 욕망일수도 있을 그 마음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조심조심 가만히 있는 녀석 옆으로 다가갔다. 그보다 더 조용히 빵을 놓아주고는 쏜살같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달려들까 봐 겁을 먹은 탓도 있었다. 뒤통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 뭐야, 언제 봤다고 인간이 먹는 빵 부스러기 따위를 주는 거야'
' 이 빵 하나로 인간이 개에게 저지르는 수많은 죄를 퉁치려는 거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반려견'으로서의 개와, '식용견'으로서의 개는 다르다는 인식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여름이면 여전히 목도하는 그 끔찍한 현실들을 겨울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유발된다. 견디기 힘들어 몇 번의 개식용 종식 캠페인에 참석했었고 현재도 후원을 하고 있는 와중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다섯 집에 하나꼴로 반려견과 함께 할 정도로 반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함께 살던 개를 휴가지까지 가서 버려 유기견을 만들고 오는 건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학대 사건도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곤 한다. 그렇다면 여기 우붓의 떠돌이 개들에게만큼은 한국의 그것처럼 잔인한 현실은 일어나지 않을까? 나는 잠시 그것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뜨갈사리의 프런트 직원으로부터 우붓 개들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우붓에서 거의 1주일을 보내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붓 곳곳에 방치된 개들이 굶주림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붓에 여행 온 한 미국 여성이 굶주린 개들을 돌보기 위해 자선 동물 보호센터를 열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발리니스' 란 발리로 여행 왔다가 발리가 좋아 눌러앉아 살게 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동안 본 발리니스 피플 들은 요가인이나 아티스트가 전부였는데 타 생명을 돌보고 싶어 발리니스가 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여행 막바지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었다. 나는 그 특별한 여성을 만나보고 싶었고 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 아침 일찍 그곳, 뜨갈사리를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남은 돈은 공항에서 필요할까 싶어 두었던 50불 한 장이 전부였다. 보호소의 불도 꺼져있었다. 궁리 끝에 그 사실을 알려준 뜨갈사리의 프런트 직원에게 50불을 보호소에 전해달라고 맡겼다. 고맙다는 짧은 메모와 함께 봉투에 남은 돈을 털어 넣은 것이다.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 한국 돈으로 한 2~3천 원 정도만 남기고 주머니를 탈 탈 턴 셈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겨우 50불에 다 눌러 담기라도 하려는 듯 무작정 그렇게 돈을 맡긴 채 우붓을 떠나왔다. 맛있는 비건 음식과 요가 수련과 싱잉볼의 소리와, 참파카 향 마사지(가성비 저렴한)로 보내던 우붓의 시간들, 그 마지막쯤에서야 튀어나온 우붓의 그 개들을 50불에 담아 잊기로 한 셈인 것이다. 내가 다시 우붓에 가게 된다면 그때보단 더 넉넉한 돈을 보호소에 전달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15년째 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여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동물들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좀 더 자비로워졌으면 좋겠다. 한국에 사는 개도, 우붓에 사는 개도, 인간과 더불어 평화롭고 편안하기를, 그렇게 공존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다.
* 오늘 자로 '개식용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포스팅이 기념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 )
*사진 출처 : 월간 펫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