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선 Dec 12. 2023

바구니를 이고 온 타히티의 소녀

선물 받는 기분으로 룸 서비스를 

 

 '아니 이렇게 가져다준다고?' 

비싼(?) 룸 서비스 밥값 지불을 마친 이후 마땅히 누릴 권리라고는 하지만 고마운 마음 한 가득해지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현재의 우리나라의 배달 현실에선 꿈도 꾸지 못할 만큼의 손이 많이 가는 배달의 방식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아날로그적 스타일이 그렇게 좋았다. 


  뜨갈사리에 머무는 동안 룸 서비스 식사를 여러 번 이용했다. 맛을 본 이후 도저히 한 번만으로 그칠 수가 없었다.  여행자답게 로컬을 다니다 비건 식당을 찾아 들어가는 것도 좋았지만, 방콕 하며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일도  마음에 들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의 식당 어딜 가나 "사장님, 죄송한데 비건 옵션 되냐고"부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편했다. 샐러드를 비롯, 나시고랭, 오믈렛, 토스트 이토록 다양한 비건요리를 편히 주문해 먹을 수 있다니! 플라스틱이나 멜라닌 식기가 아닌 단출한 도자기 그릇에 담긴 음식들도 정갈해 보였다. 


  단독 건물들이 옹기종기, 혹은 뚝 뚝 떨어진 채 논 뷰 옆에 자리한 호텔이기에 캐리어도 불가능한 곳이었다. 호기심 반 기대반으로 첫 주문을 했고, 음식 담은 둥근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온 그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갱의 그림 '타히티의 여인들' 속에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될 만큼 순수한 영혼의 그림자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긴 머리를 똬리처럼 틀어 올린 후 머리에 이고 온 바구니를 내리며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국에선 쉽게 못 먹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파파야 주스를 주문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컵에 담긴 주스까지 가져오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 하지만 염려와 걱정은 잠시 잠깐, 내가 먹을 밥에 온통 마음이 가 있곤 했다. 언제나 샐러드는 싱싱했고, 세팅도 아름다웠다. 


  소스는 올리브유와 발사믹식초를 선택하곤 했는데, 언제 어디서나 늘 옳은 비건 소스였다.(혹시나 첨가될 유제품을 미리 막을 수가 있음) 육류와 해산물 없이 싱싱한 야채를 볶아 밥을 함께 볶은 나시고랭은 풍미가 좋았다. 최애 파파야 주스도 이 음식들과 잘 어울렸다. 


  빛이 들어오는 창 밖을 보며 혼자 먹는 룸 서비스의 시간은 환상적이었다. 감탄하며 싹 비운 접시들을 그녀가 두고 간 바구니에 담아 문 밖에 내놓곤 했다. 접시와 접시 사이에 팁을 준비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으니 네가 누려도 될 순간들이라고' 신이 내게 주는 선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행복한 나날이라면 한 달은 더 있어도 좋겠다는 바람이 문득문득 고개를 들기도 했다. 예상했던 여행일의 절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프고 슬픈 것에 대해선 1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속엣말을 되새기며 맛있는 나날들을 잘 보내는 중이었다. 






이전 04화 무릎을 꿇은 이에게서 온 AUM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