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붓
애써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더라. 벅차게 기쁘거나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슬펐던 순간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혀가는 게 세상 이치다. 슬픔이 아닌 좋았던 순간도 마찬가지, 영원히 머물고 싶은 염원이 들던 여행도 그렇다. 시간 앞에서 인간의 기억이란 결코 신뢰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확신이 드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지난 여행의 순간들이 이 글을 쓰며 오롯이 떠오르는 게 신기했다. 물리적 기록의 순간들이 아닌, 감정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데서 쓰는 재미를 느꼈다. 내 여행은 결코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속해 사는 동안 '끝'이라는 말의 사용에 진중해야 함을 알아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 <끝과 시작>의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73세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탄 폴란드의 여성시인이다. 현재 그와 그의 시편들에는 수많은 시인과 독자들의 존경과 애정이 바쳐지며 널리 읽히고 있다. 그리고 나는 시인이 말하는 '끝과 시작'의 세계 속에서 '순환의 대 서사시'를 보았다. '시작과 끝'이 아닌 '끝과 시작'이라는 그 시점의 정의 말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무언가는 분명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겨울 내내 헐벗었던 숲에도 연둣빛이 번지기 시작했고, 천변의 베어낸 나무 자리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우붓 여행기'는 이쯤에서 끝을 내려한다. 두 번째 시작 또한 내 식으로 나답게 슬며시 시작해 볼까 한다.
서랍 속에서 꺼낸 여행기 3은 '북인도'와 '프랑스' 중에서이다. 이 또한 서랍 속에서 꺼내야 한다. 먼지가 너무 많아서 한참을 털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연재일을 정해놓고도 잘 지키지 못한 이 불성실함을 아방가르드한 기질 탓이라고 변명하려 한다. 기대해 달라는 말도 지금으로선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진심을 다해 그 순간 속에 머물다 오기를,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에 정직하기를 가만히 기원해 본다. 지금까지 이 이상한 서랍 속 여행기 1편을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연재일을 지키지 못한 점에 사과를 드립니다. 나마스테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