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이 나를 새롭게 하는가
고등학생 때 순전히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던 책이다. <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 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 있어 보이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책을 빌리고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까... 다 읽지 못한 채 반납을 했지. 재밌게 읽었는데 약간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병이 있다. 고치려 노력 중인데 여전히 읽다 만 책이 수두룩이다. 암튼 에세이란 장르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라 신선했다. 잘 정리된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게. '아름다움'에 대한 부분은 몇 년이 지나도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여기저기 써먹기도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몇 번 읽어 보려고 했는데 이미 절판이라 책을 구매할 수 없었고, 우리 동네 도서관에선 어쩐 일인지 분실 상태였다. 그렇게 평생 못 읽는 건가 했는데 몇 년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구매를 했지.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 올해서야 겨우 다 읽었다. 하루하루는 영 시간이 안 가는데 일 년은 어쩐지 순식간이다.
P. 5
지구는 기울어져 있다.
기우뚱 기울어진 지구 위에서 우리는 똑바로 걸으려고 얼마나 애쓰는가.
회사원도, 선생님도, 공장의 노동자도, 사장님도, 학생도 모두 모두.
기우뚱 기울어진 채 돌고 있는 지구 위에서
오늘도 똑바로 살자고 애쓰는 풍경이 안타깝고 걱정스러울 때면
나는 가슴속에 생각을 글로 쓴다. 작가는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P. 12 아름다움에 대하여
돌이켜보니 "아, 아름답다!"라고 말해야 좋았을 상황도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참 혼란스럽다. 아름다운 것을 보기 힘들어서 아름답다는 말을 잃은 것인지, 그 말을 잃어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 말이다.
<중략>
소설가 박상륭 선생에 따르면 '아름다움'의 원래 표기는 '앓음 다움'이다. 여기서 '앓음'이란 우리가 알다시피 '육체적, 정신적 아픔 혹은 고난을 이겨낸 사람답다'는 뜻이 된다. '아름다움'의 어원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주장들이 대체로 좀 억지스러운 반면, '앎음다움'이 어원이라는 주장은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 의미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P. 18 우아함에 대하여
세상 만물은 동그라미의 변용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의 생김새와 그 운행이 그러하고, 씨 뿌리면 자라는 것들과 구르는 돌멩이도 그러하다. 이렇게 자연은 회전하고 포옹하고, 우회하고 엮이며 꼬이기도 한다.
<중략>
자연은 아름답다. 둥근 것은 아름답고 곡선은 우아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곡선은 불편하고 비싸다. 곡면체의 건축물, 유형의 자동차, 둥그런 방이 있는 집과 곡선의 장식이 있는 가구는 만들기 어렵고 공정도 복잡하다. 또 재료도 많이 필요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지며 논리적이다. 반면 직선은 쉽고 각면체는 편리하다. 전후좌우 사방의 단순한 배치로 직렬과 병렬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며 논리적이다. 가공, 절단, 운반, 배치 등을 하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사각형은 가장 하바리적인 규격으로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단지 네모의 합은 더 커진 네모일 뿐이다. 동그라미 두 개가 합해지면 새로운 형태가 되지만 네모의 합은 더 큰 네모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동그라미가 포함되지 않은 사각형과 삼각형의 세계에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없다. 또 예외도 없고 빈틈도 없어서 배타적이다. 사각형의 세계에는 수식, 수평의 관계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크게, 더 많이 가져야만 우월함을 증명할 수 있다. 제각기 다름의 세계가 아니고 크기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선으로 이루어진 이차원의 세계에 갇힌 존재의 유일한 희망은 물질만능주의와 패권주의뿐이다. 똑같은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 더 큰 것을 가지는 것, 더 높이 쌓아 올라가 내려다보는 것. 그것이 동그라마가 제거된 직선의 세계 안에서 유일한 희망이고 행복이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아름다움에 대하여'가 인상 깊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완독을 하고 나니 좀 허무맹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잔잔히 읽기에는 좋았지만 초반 '아름다움에 대하여'나 '우아함에 대하여'처럼 인상 깊은 내용은 크게 없었다. 특히 [家] 부분은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P. 128 가설 도시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는 100년이 넘은 빵가게에서 여전히 아침마다 신선한 빵을 구워내고, 일본의 어느 초밥집에서는 4대째 같은 집에서 같은 맛의 초밥을 만든다고 한다. 전통 계승과 문화의 발전은 그런 유서 깊은 집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은 바로 100년이 넘은 집에서 100년이 넘게 집주인이 대물림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에서 4대째 초밥집을 하면 그것은 한 집안의 자랑스러운 역사요, 나아가 일본의 자랑스런 민족 문화로 승화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4대째 김밥 장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3대째 김밥을 말았다면 다음 세대의 자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판검사를 만들어 팔자를 고치고 말겠다는 변화에 대한 갈망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서울은 이러한 신분 상승의 욕망으로 부흥한 도시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교군을 잘못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일단 프랑스와 일본은 공교롭게도 전쟁으로 식민지를 통치하던 나라다. 프랑스가 왜 문화유산이 많은 나라인가. 루브르 박문관에 수많은 전시물이 왜 연고 없는 프랑스에 가 있는가.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는답시고 말뚝을 박고, 강제 창씨개명을 시키고, 모국어 사용을 금지한 일제 강점기는 아직도 채 100년이 지나지 않았다. 남의 나라를 수탈한 일본이나 프랑스가 100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것과 수탈당한 나라가 100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리고 김밥이랑 초밥도 좀 아니잖아. 김밥이 한국의 전통 음식도 아니고 대표하는 음식도 아니고. 기본 가격 차이도 크고.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두 음식을 비교했는지 모르겠다.
최종 감상...
15년 전에 나온 책이니까 감안하자 하면서도 한편으론 15년 전에 발간된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직도 공감되는 사회문제가 많다는 게 참 쓸쓸했다. 15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여전히 변화 없는 사회라니. 책을 읽을 때는 이것저것 후기 쓸 말이 많은 거 같았는데 막상 쓰면 헛소리나 하고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아무튼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정말로 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 그 생각은 나의 생각일 수도 있고 타인의 생각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생각이 나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지는 고민해 볼만한 문제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