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이팔청춘은 아니지만

by 에바

건강을 걱정해야 할 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서른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뭐 담배 안 하고, 술도 거의 안 마시니 운동쯤이야 아직 그렇게 챙기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자만했다. 올 초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뒷목이 당겼지만, 그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직 이십 대잖아!

그러나 웬걸 자만이 비웃는다.

"너 고혈압 전 단계래"


건강검진표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뒷목이 당겼다. 고혈압(전 단계)이라니... 고혈압(전 단계)이라니...!! 탄이 아부지 같은 사람이나 드라마에서 뒷목 잡고 쓰러지지 기업이 뭐야, 집 한 채 없는 내가 왜 뒷목을 잡아야 하나. 물려받을 왕관도 없는데 어디서 나를 짓누르고 있는 거죠?


그냥 이런 몸의 변화가 한 번씩 나이를 실감케 할 때 서글프다고. 몇 년 전만 해도 이틀 밤은 아니더라도 하루 정도 날밤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는데. 새벽까지 술 먹고 흥청흥청 놀다 첫차 타고 집에 들어가도 자고 일어나면 숙취도 없었는데. 새벽 두 시까지 과제하고도 여섯 시에 거뜬히 일어나 학원도 다녔는데. 일생에 한 번뿐이었지만 콘서트 티켓 구하겠다고 고척교 다리 밑에서 노숙도 하고, 첫 방은 꼭 출석해야 한다며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택시 타고 등촌동으로 향했는데. 이제 못 그럴 거 같아. 건강이나 체력이 변한 것도 있지만 그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열정: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원래도 그런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상에 무덤덤해지는 게 서글프다. 이미 겪어 봐서 예전보다 새로울 게 없으니 무감각해지는 일이 이상할 게 없는데도. 이상하게 기쁨, 행복, 감동 이런 감정에만 무감각해지고 스트레스에는 취약해지는 거 같아서. 그러니 자꾸 몸에 고장이 생기는 거 같기도 하고. 면역이 쌓이긴 하는데 질병에 대한 면역이 아닌 엉뚱한 면역만 생기는 거 같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모르겠는데. 스무 살의 나와 서른을 바라고 있는 나는 달라진 게 없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지나온 날들에 어렸다는 핑계를 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나는 여전히 그저 나라서. 한 톨 자라지 않아서. 한때는 자고 일어나면 서른이 훌쩍 넘어 있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그 나이쯤을 완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했으니. 모든 일에 무감하고 힘든 일도 어른처럼 쿨하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 지금은 그 나이의 미래를 그리면 조금 무섭다. 지금과 달라진 모습이 없을까 봐. 여전히 괴로움에만 민감할까 봐. 인생은 왜 괴로워야만 할까.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데,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살기 싫으면 어떡하지.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고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는데 어떡하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말하던 세경 씨는 멈춰 버린 시간 속에서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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