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사회

by 에바


버티는 사회

존버가 유행어가 된 사회

불합리를 버티고

불의를 버티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닌

개인을 개조하는 사회




취업을 했다. 항상 젊고 어릴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보편으로 어리다 말하기 힘든 나이가 됐다. 이 나이에 경력도 없이 신입으로 취업 준비를 하는데 쉽지 않더라. 사실 열정적으로 준비를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대학 졸업 후 오랜만에 펜을 잡고 공부도 했다. 오로지 취업만을 위한 자격증을 땄고, 그 증으로 어찌어찌 취업까지 했다.


"조용히 좀 하세요!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을 넘어 50만을 육박하는 이때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_무려 16년 전, 청춘 시트콤 <논스톱 4>의 유행어


청년 실업 31만 시대(19.12,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유행 당시보단 줄었지만 결코 적지 않은 청년이 여전히 실업 중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재미 삼아 따라 하던 말이 불과 몇 주 전까지 나의 이야기였고, 언제 다시 나의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오랜만에 특정 조직에 속한다는 사실에 조금 들뜨기도 했다. 회사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자소서 필수사항인 입사 후 포부처럼 미래에 성장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기대와 상상은 서글프게도 현실과 닮은 구석을 찾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일도 사람도 분위기도 적응하기가 영 녹록지 않았다. 녹록지 않은 이유가 회사 내부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고민이었다. 그럴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버텨라'였다. 버티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그저 상황에 순응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버티면 지금보다 나아질까?

정확한 문제의 원인을 꼬집을 순 없어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일 아닌가? 왜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버티라 말하는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말하는 세상이다. 한때는 공감하기도 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살아남는다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비슷한 말로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버티면 뭐라도 되겠지 믿기도 했다. 안일했다. 개선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버팀'이 의미가 있을까? 버티라는 말을 할 거면 최소한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지. 그런 노력도 없이 무작정 버티지 못한 '개인'을 탓한다. 남은 다 버티는데, 여기 있는 사람은 다 버텼는데 왜 너는 버티지 못하냐 질타한다.


사람은 각기 다르게 태어나고 특정 환경에 적응 가능한 사람 역시 특정되어 있다. 개선의 의지 없이 버티라 말하는 조직에는 그 환경에 버틸 수 있는 특정 사람만 남게 된다. 그렇게 특정인만 남은 조직은 획일화되고, 획일화된 사회가 된다. 버티지 못한 사람은 부적응자가 되고, 부적응자를 융합하지 못한 획일된 사회는 고착된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시대. 버틴 사람만이 살아남는 한국 사회는 4차 산업 시대에서 어떤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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