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두려움을 깨닫는 것

by 에바

몇 년 전에 일이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홍대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꽤 옛날 일이라 홍대 인근 카페인지, 주점인지, 홍익대학교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디에서 나왔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무렵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화장실 몰카를 보는 남성의 환상이 깨지지 않게 속옷 디자인 및 청결을 잘 유지해달라는 글이 유머랍시고 올라오기도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당시에는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정말 재수 없는 사람이나 찍히겠지. 찍힌다 한들 무슨 방도가 있나 그냥 재수 없었다 생각해야지. 그런 걸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은 묻지 마 살인이라 칭했다.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남자 6명은 그냥 보내고 수십 분을 더 기다린 뒤 여성을 살해했다. 그동안 여성에게 무시당하고 살아온 화를 풀었다고 하는데. 글쎄, 여성에게 무시당하고 살아온 사람이 남자한테는 얼마나 존중받는 삶을 살아왔을까?


몇 달 전 꿈을 꿨다. 화장실이었다. 문 아래로 카메라를 든 손이 불쑥 들어왔다. 살인마가 쫓아오는 꿈도 아니었는데 놀라 벌떡 잠에서 깼다. 그 뒤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수시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문 위아래로 틈이 있는지, 유독 다르게 생긴 나사는 없는지, 수상한 위치에 테이크아웃 잔이나 휴지가 뭉텅이로 있지는 않은지. 문짝이며 벽이며 휴지로 막아 놓은 구멍은 왜 이리도 많은지.


나에게 페미니즘은 두려움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남의 나라 얘기인 줄 알았던 화장실 몰래카메라는 카페, 학교, 회사, 병원 등 장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견되었고, 매일 같이 뉴스에선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외에도 '묻지 마'로 칭하지만, 여성만이 표적이 되는 사건들이 나왔다. 요즘은 어떻게 30년 가까운 시간을 별 탈 없이 살아왔나 경이로움마저 느낀다. 막상 생각해보면 순탄했다 말하기 어려울 수도. 별일 아니길 바랐기에 별일 아니었던 거지.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닌데도 시기마다 꼭 더러운 기억이 있다. 여고 앞에서 볼품없는 성기를 내놓고 다니던 인간. 주차된 차에서 자기 위로를 하며 초등학생이던 나를 불러 세우던 인간.

고등학생 때 한 번은 어떤 쓰레기가 차에 탄 채로 나를 불러 세웠다. 자기 조카가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데 우리 학교에 오고 싶어 한다며 학교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라. 나름 친절하게 답해 줬다. 얼추 다 물어보지 않았나 싶을 때쯤, 더 물어볼 게 있는데 날씨가 춥다며 잠시 차에 타라고 권하더라. 문득 이상한 촉이 들었다. 그리고 보았지. 볼품없는 성기를 조물딱 거리는 손을. 그때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오늘 시험 보는 날이라 그만 가야 한다 말하고 그대로 등교를 했었다. 당황하지도 않고 아침부터 눈 버렸다 생각하고 그대로 등교해서 시험을 쳤다.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정문이 있었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을까. 112 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생님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을까.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당시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차에 탔더라면 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엉만튀(엉덩이 만지고 튀기)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그리고 몇 년 전 그저 실수겠지 생각했던 일화가 엄연한 성추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쓰레기가 역에 내리는 찰나, 나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기분이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더러웠지만, 실수겠거니 생각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 내릴 때 넘어질 거 같아서 뭐라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 그랬겠지. 웬걸 가만튀(가슴 만지고 튀기)라는 전문 용어까지 있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페미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와 연대라고. 개인으로 있을 때는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며 자꾸 합리화를 했다. 버스에서 기분 나쁘게 밀착하는 인간이 있어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 거야, 불 품 없는 성기를 내놓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봐도 내가 잘 못 봤겠지. 하나하나가 범죄인데 아니길 바랐다. 나와는 먼 이야기이길 바랐다. 부정한다고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때 신고하지 못한 변태가 다른 아이를 차에 태웠다면, 우리 학교에 실종되거나 납치된 아니가 있었다면 나는 멀쩡하게 살 수 있었을까.


두려움이 커질수록 행동반경은 줄어들었다. 버닝썬 사건이 터진 뒤로는 밤새 클럽에서 놀지 못하게 되었고 간혹 늦은 밤 택시를 탈 일이 생기면 번호판에 '아빠사자'(등록된 택시는 번호판이 '아, 바, 사, 자'다)를 확인하며 꼭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페미니즘이 여성 범죄와만 관련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문제니까. 나는 조금이라도 멀쩡하게,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느낀다. 요즘 웬만한 지성인이라면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 자아실현이나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아니 바랄 수도 없다. 여성에겐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인 욕구와 안전 욕구조차 제대로 실현이 불가능한 사회잖아. 불안 없이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얼핏 멀쩡해 보이는 사회에 계속 잡음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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