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안녕히 지내는지

by 에바

한때 나의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이었던 아이가 있다. 지금은 아이가 아닐 나이지만 나는 그 애의 아이일 때 모습밖에 모르니까. 그냥 그 애, 그 아이로 칭하겠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한참 자신을 다 컸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어리기만 했던 그해, 우리 반에 전학 왔던 아이. 반반한 얼굴로 금세 친구들의 호감을 얻고 2학기 때는 학급 임원까지 했었다. 공부도 곧잘 했었던 것 같고. 그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 애가 또래 남자애보다 친절했는지, 매너가 좋았는지 그런 기억은 없다만, 그 애는 나만큼이나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았다. 교탁 앞에 서서 말을 할 때면 귀가 빨개지곤 했었으니까. 그런 성격치곤 매해 학급 임원을 했구나. 맞아, 손톱 옆에 여린 살을 물어뜯는 버릇도 있었다. 열 손가락이 멀쩡한 날이 없었다. 짝꿍이었을 때는 그런 그 아이의 손톱을 보며 한마디 했었던 것도 같고.

위에도 말했다시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드문드문하다. 짝꿍이었을 때 기지개를 켜는 척 머리를 툭 친다던지, 교실 뒤편 서랍장에 기대서서 지나갈 때 발을 걸기도 했고. 기억을 곱씹어 보니 매너가 좋기는 개뿔 또래 남자애보다 허세가 덜하고 좀 더 얌전했을 뿐 별반 다를 게 없는 애였네. 사실 그 애 말고도 일기장을 수 놓았던 이름은 여럿 있는데 왜 유독 너만 여전히 꿈에 나오는지.


하루는 우연히 버스에서 그 애를 만났다. '만났다' 보다는 '보았다'가 적절하려나. 스무 살도 훌쩍 넘고, 중학교 졸업식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거진 10년 만이었다. 졸업한 학교 근처에 오래 살아서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종종 동창을 만나곤 했는데 그 애는 참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더라. 우리 집 코앞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는데도.

이제 와 생각해보면 상황이 참 꿈같다. 여느 날처럼 버스에서 정신없이 졸다 어디쯤 왔나 확인하려 눈을 떴고, 두리번거렸고, 건너편에 그 애가 있었다. 황급히 다 지워진 입술을 발랐다. 말 걸 용기도 없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이미 말을 걸었는데 어느새 그 애는 내린 후였다. 그 애가 내리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인사조차 하지 못했을까. 서둘러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기억을 더듬어, 등굣길에 그 애를 우연히 봤던 아파트 단지를 향해 뛰어갔다. 그날은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은 날이었다.


영화였다면 만나지 않았을까. 영화였다면 시간을 되돌려 그 애에게 말을 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이상했다. 나는 너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울고 싶었다. 어린아이처럼 길에서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러면 혹시나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길에서 추태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이런 나의 기억을 네가 알게 된다면 소름 끼쳐 할까, 그런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때는 이런 글을 먼 훗날 내 옆에 있는 너에게 보여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문득 너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었던, 너는 안녕히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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