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신문 편집장인 차우와 수출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소려진. 우연인지 운명인지 같은 날, 서로의 옆집으로 이사하게 되고 두 사람의 배우자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지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가는 만큼 차우와 소려진은 마주 마주치게 되고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차우는 소려진에게 무협 소설 공동 지필을 제안한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지는데...
거진 4년 만에 화양연화를 다시 봤다. 4년 전에는 일 때문에 봤던지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2배속으로 봤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다시 보면서 반성했다. 2배속으로 봤을 때도 재밌긴 했는데 그렇게 소비할 영화가 아니었다. 1배속으로 봐도 집중을 하지 않으면 놓칠 부분이 수두룩한 영화인데!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소려진의 남편은 일본 출장이 잦은 사람이라 주변 사람들의 부탁으로 이것저것 많이 사다 주는데 한 번은 이웃들을 위해 전기밥솥을 사온다. 차우 역시 전기밥솥을 부탁했고 소려진의 남편에게 밥솥값으로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묻는데, 그때 소려진의 남편은 '부인이 주셨어요'라고 말한다...!
항간에 차우와 소려진이 자신들의 바람을 합리화하기 위해 배우자들이 외도하고 있다고 믿는 거다- 혹은 배우자들이 외도를 하는 건 맞지만 그 대상이 서로의 배우자는 아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부인이 주셨어요'라는 소려진의 남편의 말이 차우의 부인과 바람이 났다는 복선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자의 외도를 연기하는 장면에서 장만옥이 양조위를 꼬시는 척하는데 내가 넘어감. 그 표정을 뭐라 표현할 단어를 못 찾겠는데 정말 사람 간질간질하게 웃으면서 꼬시다가 양조위랑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면서 정색하는데 연기가 미쳤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이번 리마스터링 예고편에도 나왔던, 양조위가 사무실에서 담배 피는 장면. 현실에서는 담배 피는 사람 극혐하지만 영화로 보는 담배는 냄새가 안 나니까 용서. 양조위가 담뱃불을 붙이고 화면 가득 연기만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BGM으로 영어 부제이기도 한 In the Mood for Love가 나온다. 분위기 미쳤다. 공허하고 부질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거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한 장면만 더 말해보자면, 영화 후반에 양조위가 싱가포르로 떠나고 뒤늦게 호텔에 찾아온 장만옥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온통 붉은 호텔에서 대비되는 초록 의상을 입고 우는 게 두 사람이 결국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화양연화의 상영 시간은 99분으로 다소 짧다면 짧은 편인데 그런 만큼 삭제된 장면이 많고, 축약되어 있다. 영화 초반에 보면 신문을 빌리기 위해 차우네 방문한 소려진에게 차우는 무협지를 좋아하냐 묻고 자신에게 몇 권 있으니 빌려줄까 묻는다. 소려진은 다음에 라며 거절을 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신문이 아니라 책을 반납한다. 신문을 빌리러 갈 때는 차우가 있음에도 차우 부인을 찾았는데 어느새 차우한테 책을 빌릴 정도로 친분을 쌓았단 말인가!
두 사람이 핸드백과 넥타이의 출처(?)를 묻고 배우자의 외도를 알아채고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처럼 담벼락 아래서 배우자의 외도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얼핏보면 시간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장만옥의 의상이 다르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장면 같지만 주의깊게 보면 다른 날인 장면들이 꽤 있다.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하는데 그때 역시 배우자의 외도를 연기해보며 양조위가 장만옥에게 겨자 소스를 덜어준다. 접시를 클로즈업한 화면이 장만옥의 접시에서 양조위의 접시로 이동하고 다시 장만옥의 접시를 보여주며 컷이 바뀌는데 역시나 장만옥의 옷이 바뀌어있다. 식사가 끝나고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또 장만옥의 옷이 다르다. 집중에서 보지 않는다면 하루 동안의 일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그런 장면을 하나 더 찾았다. '미리 이별 연습을 해봅시다' 대사와 함께 이별 연습을 하고 장만옥이 양조위 어깨에 기대 펑펑 운 다음 택시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장만옥이 '오늘은 안 들어갈래요'라고 말하는데 당연히 같은 날인 줄 알았지! 근데 또 장만옥 옷이 달라! 다른 날이었네. 이렇게 영화를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야금야금 여러 날을 거쳐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영화를 2배속으로 봤었다니 다시 한번 반성 합니다.
봤던 영화를 또 보는 재미는 이런 곳에서 나오는 거 같다. 한 번만 보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낼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 화양연화는 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데 재미없다는 감상도 이해 가긴 한다. 예쁘게 포장된 내로남불이라는 말에도 공감하고. 그럼에도 음악과 연출이, 장만옥과 양조위의 연기가 미쳤다고 밖에 설명이 안 돼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