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집에서 바나나 키우기'라는 글을 봤다. 본문을 다 읽을 동안 의문점 하나 느끼지 못한 채, 댓글을 보고 나서야 만우절 낚시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만우절과 하등 상관없는 날 봤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다 말해두겠다. 무튼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행운목이었다.
"행운목을 키우시는 분들은
줄기에 돌아가면서 난 칼자국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싹이 나오도록 유도된 겁니다.
실제로도 저 칼자국 난 곳에서 싹이 나와 자라고 있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professionaldog/221502287873
몇몇 식물은 싹을 틔우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낸다. 신기한 일이다. 식물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일부러 칼자국을 내어 싹이 자라도록 유도하다니! 휴면타파나 생장촉진 등을 위하여 식물 눈에 상처를 주는 이 농법은 '아상 처리'라 부른다. 행운목뿐 아니라 배, 사과, 포도, 블루베리 등 많은 식물이 싹을 틔우기 위해,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멀쩡한 가지에 상처를 낸다. '접붙이기' 만큼이나 신기하고 누가 처음 알아냈을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까지 해서 싹을 꼭 틔워야 하나?' 의문도 든다. 성장을 강요하는 느낌도 있다. 스스로 상처를 내 싹을 틔우는 식물이었다면 달랐을까?
상처는 고통을 수반한다. 워낙 아픈 걸 싫어하기도 하고 상처는 곧잘 흉터로 새겨지니. 내가 행운목이라면 아픔과 흉터를 감수하면서까지 싹을 틔우고 싶을까? 단호히 아니라 답할 테다. 문득 상처받기 싫어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에 다닐 때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상처받기 싫어 안절부절못했다.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싫었다. 작은 생채기에도 겁을 냈다. 생채기는 금방 상처로 덧나 흉이 지곤 했으니까.
부피만 커지고 성장하지 못한 내 몸에도 생채기를 내면 싹을 틔우고 성장할 수 있을까. 어쩌면 상처의 단면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흉이 지기 전에 싹을 틔우자. 상처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좋은 일만 하고 살아도 짧을 생임에도, 서로에게 상처 주기 바쁜 세상. 스스로한테 상처 내지 못해 안달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상처 주고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고, 간혹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냈다. 그저 아물기만을 바랐고 흉이 남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 바라는 시간은 끝났다.
네가 남긴 상처에도 스스로 낸 생채기에도 싹을 틔우자.
눈물로 물을 주고
핏물을 양분 삼아 싹을 틔우자.
딱지가 앉아 흉으로 자리 잡기 전에
어린잎이 밖으로 나오도록 길을 내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