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어도 누군가와 사귀기 전 설렘 뿜뿜하는 때가 떠오르는 노래, 소유x정기고의 ‘썸’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네 거인 듯 네 거 아닌 네 거 같은 나-' 가사를 듣노라면 썸을 타는 남녀가 서로 상대의 마음이 확실히 본인에게 온 건지 고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대개 사람들은 본인이 호감 갖는 대상이 나와 같은 마음이길,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길 바란다. 그래서 썸탈 때는 상대의 특정 행동이 내가 짐작하는 이유로 나타난 게 맞는지, 내가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건 아닌지, 상대의 몸짓이나 태도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고, 상대에 대한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썸은 설레는 경험이고, 썸을 타며 상대를 알아가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이후 연인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기에 이 단계가 중요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정말 ‘안 변하기’ 때문에 연인 관계에서,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행동이나 생각이 내 맘과 같지 않다고 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언제, 어떤 일을 계기로 이걸 확실히 깨닫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정말 안 변한다. 정말 안 변한다고 99.9%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하기 어려운 정도는 나이가 한 살 더 먹어갈수록 두 배, 아니 몇십 배씩 커진다.
결혼 적령기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를 선호하는 이유도 생기발랄한 외모 외에 나이가 적을수록 본인들이 바라는 여성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란 말이 있던데, 30세인 지금의 나와 첫 연애를 했던 20세의 나를 비교해보니 그걸 발견한 남자들이 똑똑하게 느껴진다.
아동 발달에 관한 한 논문에 의하면 7세 정도면 한 인간의 자아 형성이 끝난다고 한다. 그런 7세를 4번이나 더 겪은 30세쯤이면 갑자기 자신의 사업이 망한다든지, 몹쓸 병에 걸린다든지 등의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30대인 내 성격이나 40대인 남자친구의 성향, 50대인 부모님의 태도 모두 지금과 앞으로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20대의 나는 수능이 끝나고 하루에 10시간씩 몰아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폐해 때문인지 ‘사랑의 기적’, ‘감동 실화’ 이런 류의 것들을 신봉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따라서 당시 다투기만 하면 잠수를 타는 남자친구의 태도를 수십 장의 편지로 고쳐보려고도 했고, 잠시 바뀐 남자친구의 행동에 ‘역시 사랑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게 없다’며 그와 나를 역경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지켜낸 운명적 관계라 착각하기도 했었다.
고민이 많은 친구에게 내가 친구보다 더 그 상황에 몰입해 친구에게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조언을 하기도 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았음에도 내 조언을 따르지 않은 친구를 보고 현타를 느낀 적 역시 한 두 번이 아니다.
내 맘 같지 않게 행동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내 맘과 같이 행동하게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기도 하고, 마음고생을 하고, 답답해하기도 하고, ‘대체 쟨 왜 저럴까?’라며 타인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 노력들은 결국 쓸데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뭐라 한들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하루라도 일찍 깨닫는 것의 좋은 점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어딨어? 계속 대화를 하고 회유하면 바뀔 수 있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노력과 사랑과 회유로 사람은 당연히 변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할 일도 많고 맛보아야 할 음식도 산더미인 우리 삶에서 이렇게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굳이 스트레스 받으며 희망 고문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문제아를 정신 차리게 한 선생님 이야기 등의 감동 스토리가 영화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사람이 바뀌는 건 현실에서 지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일임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관계를 맺어나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맘같이 행동해 주지 않을 거란 걸 안 이상,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현명할까?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남자친구라면, 그래도 내가 지금 이 남자와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내 맘과 같이 행동하지 않아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보다(그게 콩깍지이든, 그의 one and only 장점이든 간에) 그가 나에게 주는 행복이 훨씬 크기 때문일 테니 남자친구를 계속 만나가면 된다.
물론 에티켓이라든지, 나쁜 버릇 등 사소한 것들은 연애 과정에서 맞춰갈 수 있겠지만 그의 타고난 성질이나 오랫동안 믿어온 신념 등은 몇 년 간의 연애로도 내가 결코 바꾸기 힘든,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그가 주는 행복을 하회하는 한 관계를 지속하고, 만나갈수록 행복은 줄어드는데 스트레스는 커진다면 그때는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면 된다.
결국 이 모든 게 내가 행복하자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포기하면 편하다, 하지만 발전은 없을 테지’라는 오래된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자기 계발이나 커리어 성장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관계나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는 오히려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내 정신 상태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