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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19. 2022

동남아에 살아서 누릴 수 있는 호사(豪奢)

결혼기념일이 다가옴에 따라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아내는 한결같이 무서운 존재이기에 식당 하나 고르는 것도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하루는 아이들 태권도장에 다녀오는데  도로 곳곳 레스토랑 개업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도 앱을 찍어보니 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족자카르타로 이사 온 후로 므라삐 화산이 있는 북쪽 방향으로는 가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레스토랑이 확실히 오픈한 건지 전화를 걸어 확인한 후에 택시를 호출 출발했다.


화산이 잘 보이는 한적한 위치에 있는 레스토랑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발리의 어느 리조트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부는 우붓(Ubud)에 있을 법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잘 채워놨다. 사실 우붓의 예술가들 또한 자바의 힌두 왕조가 퇴각하면서 함께 간 이들이니 족자카르타와 발리의 공예품들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 안에는 멋진 수영장도 있고 나름대로 모래사장에 비치베드도 준비되어 있다. 그네 해먹 있고, 바도 두 개나 만들어 놓았다.


예약을 따로 하지 않고 갔는데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이 문 앞에서 안내를 한다. 예약을 안 했고 가족이 네 명이고 그중 둘은 아라고 말하니 의미심장하게 우리 레스토랑은 최소 주문금액이 있는데 성인은 한화로 7,000원, 아이들은 4,000원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알겠다고 하니 자리로 안내한다. 그네와 모래밭이 있는 수영장 쪽 자리로 안내를 받아서 최소 주문금액을 신경 쓰면서 메뉴판을 봤다. 대략 한화로 계산할 때, 콜라 한잔 1,200원, 1리터 생수 1,5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 2,000원 등등의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식사 피자 한판 8,000원, 김치 퀘사디아 7,000원 하는 식이다. 인테리어도 음식의 맛도 괜찮은 호텔 수준인 걸 생각해보면 미안한 가격이다. 아이들이 그네 타는 걸 좋아해서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네 시간 넘게 머물다 왔다.      


기분 좋게 밥을 먹으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이곳에 살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청담동이나 한남동 같은 곳에 이런 식당이 있었다면 부담스러워서 가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최소 주문금액이 어떻고 하면 긴장을 했을 수도 있고 얼마나 나올지 모를 계산서를 생각하다 보면 밥을 편하게 먹지 못했을 수도 있을 노릇이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은 그저 물가가 싼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그중에서도 물가가 가장 싼 축에 속하는 족자카르타에 살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흔히 우리는 편하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릴 때 호사라고 이야기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일상이라면 그걸 굳이 호사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건 그들의 기준으로 호화나 사치는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 특별한 장학금도 없이 유학 중인 나의 경우엔 이것이 분명 호사인데,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 호사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 이곳에서의  특이점이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 반씩 실력도 인성도 준수한 인도네시아 사범님들에게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는데 한 달 강습료가 5,000원이다. 그 열 배를 가족의 한 끼 식사에 쓰면서도 손이 덜덜 떨리지는 않으니 이건 분명 국인이라 누리는 호사이다. 그러고 보면 경제력이 이렇게 무섭다. 개인의 격차뿐 아니라 국가 간 차도 이리 현저하니 말이다. 개인의 인격, 보편적 인류애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세상이 막상 그렇지도 않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 저런 현실에 별 도움 안 되는 생각들을 하며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식당을 나오니 다시 현실이다. 논, 허름한 집, 역시 허름한 가게들, 작은 숲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시골도 이런 시골이 없다. 우이동쯤은 되는가 보다 했는데 본적지인 충북 보은 같다. 그래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지 않고 현실을 즐길 수 있는 건 오로지 낙천적이고 친절한 자바인들의 성품 덕분이다. 저들이 행복하게 사는데, 늘 불행하다고 난리들인 한국인으로서 뭔가를 평가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족을 배우는 것은 결코 정신승리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행복한 자바인들을 보면 그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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