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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15. 2022

커피의 힘

커피를 좋아한다. 한국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하던데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낫다. 그다음은 M**** 믹스커피다.


커피는 역시 중독인 건지 밥을 먹으면 늘 믹스커피 생각이 나고 한국에 비해 현저히 비싼 M모카골드를 사 먹을 수 없어서 바꾼 이곳의 믹스커피를 먹다 보면 한국의 믹스커피 맛이 그리워진다.


별다방의 커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 보니 늘 갔던 장소, 그곳에서의 추억을 생각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내와 별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그런 이유로 할 이야기가 많다. 발리 관광지가 새겨진 머그컵을 보다 보면 저기 한 번 또 가봐야 하는데,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추운 겨울날 신혼여행지의 별다방에, 천문 시계탑  열 두 사도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일을 아내와 떠올리기도 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 함께 했던 십여 년의 추억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그 일정한 커피 맛 바로 그들만의 매력인 것이다.

    

요 몇 년 동안은 내가 직접 로스팅수마트라 커피를 주로 마셨다. 맛은 랜덤으로 나오지만 200그램씩 로스팅할 수 있는 10만 원짜리 수동 로스터와 1구짜리 가스레인지를 가지고 열심히 커피를 볶은 다음 선풍기 바람으로 식힌다. 그리 수동 그라인더로 열심히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린다. 품은 많이 들어가지만 한 주간 동안 기분 좋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집안을 커피 향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농담을 종종 듣게 되는데 가끔 커피를 준비하는 게 번거로울 땐 역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가 제일이다. 며칠 전 장 보러 갔던 몰에서 아이들을 트램펄린 장에 들여보내 놓고는 아내와 커피를 마셨다. 기본 커피가 자바 전통 커피였는데 한 잔 시켜서 마셔봤다. 아주 단 커피믹스 맛인데 독특한 향이 나쁘지 않았다. 1500원을 내고는 어떤 노력도 들이지 않고 그저 앉아서 정갈한 커피잔에 나온 커피를 받아 마시니 맛과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마트라(아쩨 가요, 만델링, 람풍, 린똥 등)와 슐라웨시(또라자), 발리(낀따마니), 누사뜽가라(플로레스) 등에서 양질의 아라비카 커피가 생산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쩨 가요와 또라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커피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 이곳 사람들은 주로 로부스타 커피를 마신다. 자바가 원래 커피로 유명했던 지역이지만 현재는 몇 군데를 제외하면 로부스만 생산한다. 자바 사람들은 로부스타를 아주 잘게 갈아서 물에 탄 다음 가라앉혀서 설탕을 넣어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 구멍가게에서 그렇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도 많다. 나도 따라서 몇 번 마셔봤었는데 목에 걸리는 느낌이 별로다. 아침부터 단 커피를 마시는 것도 역시 별로다.


재미있는 건 그 커피 맛이 별로였다는 걸 기억하는 것처럼, 누구와 마셨는지도 잘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함께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지난 성탄절에 Slamat Hari Natal!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Merry Christmas!라는 의미다. 무슬림에게 받는 성탄인사라서 새로웠다. 그 문자를 받고 보니 그 친구와 마셨던 커피 생각이 났다. 아내와 Traditional Javanese Coffee라고 쓰인 메뉴를 시켜서 마시면서도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커피의 힘은 단순히 맛과 향이 아니라 바로 추억이다. 우리의 시간을 그때 그 자리로 돌릴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 루왁이나 게이샤 같이 비싼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사실은 맛보다는 그 경험과 추억, 함께한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일 거다. 좋은 사람과 자판기 커피를 기분 좋게 나뉘 마신 기억은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자리의 루왁커피보다 훨씬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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