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책을 하는데 람부탄(Rambutan)이 나무에 달려있다. 감나무에 감이 달린 느낌처럼. 그러고 보니 엊그제 아이들과 태권도장에 갔을 때도 그 앞의 나무에 열린 람부탄 열매를 아이들이 따먹고 있었다. 어렸을 땐 감이 그렇게 흔한과일이라고 생각됐었는데 람부탄을 보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어에서 람붓(rambut)은 머리카락을 말한다. 풀을 의미하는 름뿟(remput)과 늘 헷갈려서 머리를자르러 가면 름뿟을 잘라달라고 하고 풀을 자르러 오면 람붓을 잘라달라고 했었다.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알아들으면 틀리지 않은 것이고 상대방이 피식 웃으면 바꿔 말한 걸 알아채곤 했었다. 두리안의 경우도 가시라는 의미의 두리에 안이라는 명사형 어미가 붙은 것인데 람부탄도 머리카락인 람붓에 명사형 어미 안이 붙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 난 열매처럼 보인다. 감나무보다는 밤나무와 비슷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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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망고나 바나나, 람부탄과 노니, 잭 푸룻 등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냉동된게 아니다 보니 더 맛있다. 값도 싸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선 그것들이 제철과일이다.그러나 그런 이유로 비싼 과일인 사과나 딸기에 비해 귀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람부탄을 보면서 "감"을 떠올렸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맛있는 과일일 수도 있지만 흔하다 보니 별로 귀하게 느껴지지 않는 존재 말이다.
그러나 기후가 바뀐 이곳에서감이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여름인 곳이다. 비가 오는 여름이냐, 비가 오지 않는 여름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과나 배, 혹은 감 같은 과일은 죄다 중국 수입이다. 가끔 한국에서 오는 과일은 명절에나, 그것도 선물을 받았거나 비싼 값을 주고서만 먹어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감도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귀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 좋아하던 과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 식으로 소중한 것들의 위치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계속해서 돌고 도는가 보다. 그렇게 좋아하던 눈이 군대만 가면 끔찍해지고 다시 제대를 하면 좋아지는것처럼 말이다. 인간관계도 비슷하지 않겠는가? 상황이 바뀌다 보면 오늘 싫어하던 사람과 내일 친해질지도 모를 일이니 인생에 그런 희망을 한번 가져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