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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Mar 26. 2022

므라삐 화산(Mt. Merapi) 지프 투어

어디를 가나 몇 다리 건너다보면 아는 사람이다

몇 주 전 기족들과 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랩(차량 호출)을 불렀다. 언제나처럼 기사분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얼마나 살았는지, 앞으로 뭘 할 건지 등등, 나와 가족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다. 공부하러 와 있다는 말에 다시 학교와 학과를 묻고 논문 주제까지 물어보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 친구도 나와 같은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교수님이다. 기사분은 계속 자기 친구가 박사과정생이라고 주장하며 사진을 보여준다. 같은 과정 졸업하신 건 맞는데 지금 강의하고 계시고 그날도 발제 준비 때문에 연락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몇 다리 건너다보면 다들 연결이 되나 보다. 그렇게 인연이 돼서 나중에 근처 관광할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이야기를 나눴었다. 마침 아이들 중간고사가 끝나서 어딜 데리고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사분께 연락을 해서 므라삐 화산 지프 투어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지프 투어 이후의 일정도 함께 하기로 했다. 인연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므라삐 화산은 백두산보다 높다. 내가 사는 동네도 므라삐랑 멀지 않기 때문에 이미 고도가 어느 정도는 된다. 그래도 지프 투어를 하기 위해 올라가다 보니 귀가 먹먹하다. 지프 투어를 하는 여행사들이 상당히 많은데 기사분 소개로 가까운 여행사로 들어갔다. 배정된 지프 기사분이 갑자기 본인은 영어를 못해서 운전을 못하겠다고 한다. 여행객인 줄 알았나 보다. 이미 3년 넘게 살고 있다고 인도네시아어로 대화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헬멧을 받아 쓰고는 지프 투어를 시작했다. 한국돈 3만 원 정도면 4인 가족이 지프로 1시간 30분 정도 투어를 할 수 있다. 마을 곳곳이 지프 투어를 위한 장소로 개발되어 있고 동네 분들이 중간중간 돈을 받고 있었다. 동시에 수십대의 지프가 여기저기서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걸 보니 아마도 이 마을의 주요 소득원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반도로로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이들은 귀가 먹먹하다며 조금 짜증을 냈다. 그러다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서 울퉁불퉁한 길을 거칠게 달리니 10살, 8살인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투어를 즐기기 시작했다. 안전지향의 아빠 밑에서 자라느라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스릴이 느껴졌나 보다. 개울도 건너고, 대나무 숲도 지나고,  다리 몇 개를 건너고 나서 작은 박물관에도 들렀다. 멋진 자연 속에서 좀 거친 드라이브를 하는 느낌이 괜찮았다. 므라삐 화산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스폿에도 내렸었는데 날씨가 흐려서 산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우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에서도 므라삐가 잘 보이는 날은 한 달에 두어 번뿐이다.


지프는 이제 다리를 건너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수줍음 많고 사람 좋은 젊은 지프 기사분은 사진도 많이 찍어 주고, 관광가이드처럼 설명도 잘해 주었다. 만족스럽게 투어를 마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십대의 지프가 모여서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는 것처럼 물보라를 일으키며 질주를 하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았다. 약간 지쳐 있던 아이들이 처음 비포장 도로에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란다. 서너 바퀴를 그렇게 돌고 나서는 기사분이 얼마나 더 타면 되냐고 묻는다. 자기는 열 번을 더 돌아도 상관없단다. 아이들이 무서울까 봐 걱정되고 뒷자리에 앉은 아내는 아이들을 붙잡고 있느라 심신이 지쳐 보였다. 놀이기구나 워터 슬라이드를 탈 때도 난 늘 안전을 걱정하곤 하는데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는 지프는 오죽하겠는가? 그만했으면 좋겠어서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가자고 하니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열 번을 더 태워 달라고 한다. 짧은 시간 협상을 통해 두 번을 더 타고는 베이스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가서 조금 더 둘러보다가 집에 돌아오니 저녁시간이다. 아내도 나도 녹초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최고의 하루였다 흥분 가라앉지 않는다. 힘들어도 이 맛에 외출을 하고 여행을 하나 보다. 몸은 녹초지만 기분은 상쾌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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