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ke Jun 10. 2022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마련이다. 인도네시아에 3년 반을 살면서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계속해서 배우는 중이다. 단순히 모기에 물렸다고 생각했는데 뎅기열에 걸렸던 것일 수도 있고, 배탈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티푸스일 수도 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민감하게 조심해서 살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타국에 사는 것의  불편함과 두려움에 질려 버려서 도망가 버릴 수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이곳 사람들을 한국 사람처럼 생각하면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아주 간단한 일도 복잡하게 해야 할 때도 있다. 죽어도 안 될 것 같은데 되기도 하고, 당연히 될 일인데도 전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저 남의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이방인이니 맞춰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면 역시 실망해서 돌아가고 싶을 수가 있다.


그런 본질적인 것들 말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재미있다. 앱으로 과일 주문하다가 로컬 바나나를 팔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암본 바나나였다. 아마도 인도네시아 동북부의 섬인 말루쿠주의 암본에서 왔거나 그 지역의 품종인가 보다. 원래 시중에 팔리는 바나나는 카번디시 품종뿐이라고 들었었지만 여긴 열대지방이 아닌가? 어떤 집에는 피상 고렝(pisang goreng, 바나나 튀김)용 바나나가 있어서 바나나를 따면 튀김을 해서 주시는 분도 계셨다. 전에 살던 집엔 애플 바나나라고 부르던 사과맛이 약간 나던 바나나 나무가 있었다. 약간은 풋내 같은 게 나서 계속해서 먹게 되지는 않지만 한 송이를 따면 적어도 낱개로 백개 이상은 달려있기 때문에 이웃들과 나눠먹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었다.  


아내 암본 바나나 맛이 있다고 하여 요즘엔 암본 바나나를 주문하게 된다. 한 바구니에 한국돈으로 2000원쯤 하는데 사흘이면 물러지기 때문에 하루 이틀 아침으로 먹고는 나머지를 튀겨다. 바나나 튀김은 카페에서나 시켜먹었었는데 집에서 해 먹어도 맛이 나쁘지 않다. 아내는 또 가끔 캐나다에 거주할 때 세컨컵에서 먹던 바나나 브레드가 생각난다며 물러지기 시작한 바나나를 가지고 바나나 브레드를 만들기도 한다.  



문득 집 정원에 있는 야자나무에 열매 같은 게 열려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혹시 대추야자 나무인가 싶어서 찾아보니까 좀 다르게 생겼다. 동네 정원 관리하시는 분들을 보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alm 트리를 이곳에선 Palem이라고 부른다. 야자나무일 것인데 그 종류가 많다. 코코이 열리는 것이 무엇인지, 팜유는 어떤 나무에서 나는 건지, 또 대추야자는 어디서 열리는지 알 길이 없다. 정원에 하나가 있고 옆집과의 경계에 하나가 있다. 정원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혹시 저기 열리는 열매가 대추야자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먹을 수 있냐고 물으니 역시 아니란다. 그럼 그 이름이 냐고 물으니 Palem Biasa라고 한다. 보통 야자라는 뜻인데 그다지 쓸데는 없나 보다. 옆집과의 사이에 있는 키가 큰 야자는 혹시 코코넛이 열리는 나무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란다. 그것은 Palem Botol, 병 야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 먹을 수 있는 하나도 없다.

 


그렇게 바나나에 대해서도, 야자에 대해서도 배운다. 바나나의 멸종 때문에 바나나를 먹지 못할 걱정은 이제 덜어도 될 것 같고, 우리 집 아이들이 매일 가지고 노는 나뭇가지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를 외치며 그 앞에 주단처럼 깔던 종려나무 가지라는 새로운 식견도 생겼다. 어떤 나뭇가지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지만, 보아하니 다들 야자(종려) 나무에 속하는 것이고 나뭇가지도 사실 다 비슷하게 생겼다. 아마도 예루살렘에도 그 여러 종류의 야자나무들이 사이좋게 자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곳에 살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결국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 자신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현실 자각의 시간이 되기도 하다. 동남아의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무시가 있던 사람들도 막상 와서 살아보면 다른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편견도 마찬가지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수업 시작시간이 오전 7시였다. 게으른 게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이곳에서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그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뉴턴처럼, 이곳 사람들의 지혜를 거인처럼  존중하며 새로운 지혜를 배우는 것일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므라삐 화산(Mt. Merapi) 지프 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