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문화 중의 하나가 바틱이다. 몇몇 다른 나라에도 바틱 공예가 있다고 들었지만 인도네시아, 특히 자바인들이 갖는 바틱에 대한 자부심은 유별나다. 중부 자바에 살다 보니 종종 자바어로도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앞에 M이 붙은 느낌으로 살짝... 음 하면서 바띡, 이라고 발음하면 비슷하다. 아이들이 바틱 공예 체험하는 것을 한 번 보니 밀랍(Wax) 종류의 액체를 끓여서 파이프 모양의 필기구에 담은 다음에 천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색을 입히면 왁스 부분을 제외하고 염색이 된다. 그런 방식으로 옷감도 염색하고 그림도 그린다. 더운 나라이다 보니 슈트를 입기보다는 바틱 셔츠를 입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고 학교에서도 바틱 데이를 정해서 바틱을 입는 것을 장려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적 정체성에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여행자의 거리로 불리는 말리오보로에 나갔다가 딸아이가 머리핀을 구경하는 동안 벤치에 앉아 있다가,한 중년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여행자인지 아닌지, 직장인인지 아닌지, 왜 왔는지와 같은 지극히 사적인 질문들을 한다. 몇 가지를 대답하고 인사를 하려는데 자신은 뒤에 있는 골목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구경하고 싶으면 와봐도 된다고 했다.여러 번 권하는데 계속 거절하기도 그래서 일단 따라가 봤다. 갤러리에 있는 분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다시 나가는 걸 보니 호객행위였었나 보다. 그런데 그림을 사라는 이야기도, 강의를 들으라는 이야기도 없어서 설명만 듣다가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문득, 이들이 바틱에 대해 설명할 때는, 이들의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고 이를 알리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유독 자바인들은 자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자바인의 숫자만 1억에 가깝다. 자바어 사용인구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종족 집단(ethnic groups)이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것에 비해 자바인들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며 정치. 문화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들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것,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그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바틱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한참 설명을 하다가 이미 내가 바틱을 만드는 과정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더 신나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기도 한다.
좋은 것은 숨기지 않고 자랑하게 된다. 나누고 싶다. 열등감보다 자긍심이 넘칠 때 그것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때로 다른 종족 집단의 경우 일종의 열등감을 갖고 있거나 주눅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종교적 마이너리티인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뭔가 자신감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쯤 캐나다에 거주할 때 한 어르신께서 자신이 70년대에 이민 왔을 때는 한국 제품이 정말 보잘것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마트에서 한국산 성냥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사 왔는데 그 품질이 좋지 않아서 서럽고 속상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제품이 마치 자신들의 모습 같아서 더욱 서러웠을 것이다. 김구 선생께서 문화 강국을 꿈꿨던 것이 이해가 된다. 이제 BTS나 한국 드라마, 그리고 삼성의 존재가 한국인이라는 소개에 덧붙이는 다른 설명을 불필요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자바인들에게 바틱이 그런가 보다.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도로 널리 전파해야 하는 가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