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해야 할 계절에도 추수가 가능한 곳이니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다르긴 하다. 그래도 바나나 나무를 빼고 보면 우리 가을 농촌 풍경과 많이 다르지도 않다. 쌀밥과 고추에 진심인 것도 그렇다. 가끔씩 자바어를 안 배울 건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존댓말이 있다고 들어 배울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하다가 생각해보니 그 부분도 우리와 닮았다. 라이팅 수업을 돕는 텍사스 출신의 펠로우는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자바족의 특징이 돌려 말하는 거라는데 그 부분도 비슷하다. 아니 충청도스럽다. 아내는 그래서 이곳이 청주 출신인 내가 살기 참 적당한 곳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것저것 읽다 보니 우리와 얽힌 역사도 있는 나라다. 이곳도 오미크론이 난리라서 며칠 전 종교사(History of Religions) 시간에 발제를 맡은 학생이 줌 수업에 못 들어왔다. 정규과정생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역사학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두 분의 교수님은 수줍음 많은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시켰다. 지난 수업엔 불교를 이번 수업엔 유교를 다뤘기 때문에 실라부스에도 없는 한국의 종교상황과 역사를 나에게 물었던 것이다. 특히 한 교수님은 한국 드라마 팬이라서 여러 번 신라와 고려시대 역사를 나에게 물었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논문 몇 개, 기사 몇 개를 찾아서 읽어 뒀었다. 읽었던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니 다들 너무 좋아하신다.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에 가던 길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불교왕국 스리위자야에 들렸을 수 있다는 이야기(김영수), 신라시대 고분군에서 발견된 자바 동부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리구슬 이야기(James Lankton), 그리고 조와국(마자파힛 제국을 의미)의 중국계 상인이었던 진언상과 그 손자의 조선방문 기록 등에 대한 이야기(조흥국) 등이었다.
인도네시아와 이슬람이라는, 나의 인생과 전혀 상관없던 내용들을 배우고 있는데 우리 역사와 닿아 있던 부분들을 만나게 되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국가와 국민들의 태도가 세계를 향해 열려있을 때 발전한다는 사실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의 신라시대 고려시대엔 이미 동남아, 중앙아시아, 아라비아, 유럽의 문물들이 수입되고 인적교류도 있었는데 오히려 조선에 이르러 그런 교류들이 점점 막히게 된 부분이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수업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보로부두르 사원이 대승불교 사원이라는 거다. 소승불교가 주류인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대승불교의 흔적인 것이다. 사원이 건축되던 시기가 우리의 신라시대인데 그즈음 어쩌면 우리와 교류했을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승불교와의 관련성은 나중에 보로부두르에 방문할 일이 있을 때 공부해봐도 좋을 것이다.
나의 연구분야는 인도네시아의 기독교-이슬람 관계이지만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과 교류했던 흔적을 알게 되는 것이 기분이 좋다. 이들 역시 내가 한국 이야기를 할 때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곳의 한류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교수진, 그리고 그 자녀들의 상당수가 K-Pop과 K-드라마(drakor)에 열광한다. BTS의 나라에서 온 학생인 나를 그들은 기대 이상의 호의로 대한다. 나에게 한국말로 인사해주고 한국어 호칭을 붙여줄 때마다 조국에 감사한 마음이고 한류스타들에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글로벌하던 신라시대처럼,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