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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Mar 24. 2022

비 구경

아이들을 태권도장에 데리고 갔다가 추수가 끝난 논을 봤다. 두 주전에 사진을 찍었을 땐, 분명히 벼가 익어 있었는데 이미 추수를 끝내고 비어있는 논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모작을 하는지 삼모작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생경한 모습 때문에 익숙한 이곳이 이국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현실적 차원에서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핏 보면 한국과 별 다를 바 없는 농촌의 모습이지만 디테일이 다른 것이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아내와 근처 로컬 카페까지 걸어갔다가 왔다. 14,000루피아, 딱 1달러 되는 돈으로 밀크티 두 잔을 시키고서는 자리에 앉았다가 졸지에 비 구경을 하게 됐다. 우산이 있었지만 우산을 쓰고도 돌아갈 정도의 비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기에 내리는 비는 살벌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천둥 번개가 심하기도 하고, 가끔 나무와 가로등이 넘어질 정도가 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도 된다. 정전이 될 때도 많은데 우리 집은 지하수를 펌프로 올려 쓰고 있기 때문에 정전이 되면 전기와 수도, 인터넷까지 다 멈춰버리는 불상사가 생기고 만다.    


비 구경을 하며 도로를 보고 있자니, 배달 오토바이, 여러 종류의 차들, 우리의 포장마차 리어카 역할을 하는 까끼 리마까지 많은 이들이 지나간다. 우산 쓰고 태권도장에 돌아가지 못할 정도의 비는 아니었나 보다. 주변의 몇몇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는데 다들 젊다. 오후 서너 시의 시골 동네에 이렇게 많은 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나 싶다. 태권도장에만 가도 아이들이 수십 명이다. 한국엔 젊은이가 없다, 아이들이 없다 하는데 이곳엔 논농사를 짓고 있는 시골 동네에도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한겨울에도 추수가 가능한 이곳의 농사 환경만큼이나 생경한 모습이다.

 

비가 어느 정도 그쳐서 돌아가려고 우산을 쓰고 나오니 젊은 남자 직원이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어딜 가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를 듣는 것은 한국인의 기분 좋은 특권이다. 몇 걸음 걸으니 오는 길에 아이들 과자를 사러 들른 가게의 아주머니가 눈인사를 한다. 좀 더 걸어 아이들이 태권도장으로 돌어가니 준비, 앞차기와 같은 기합이 들린다. 이른 봄의 추수가 아니었다면, 시골에도 아이들과 젊은이가 많던 30년 전 한국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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