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고 얼마 안 돼서 나이가 지긋하신 그랩 기사 아저씨 한 분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었다. 언제나처럼 처음엔 꼬레아(한국), 그다음은 꼬레아 슬라딴(남한)이라고 말을 했다. 나는 이곳에서 북한에서 온 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인도네시아 분들은 자꾸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확인한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분은 한국인을 만났으니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10여 년 전 므라삐 화신이 분화했을 때 본인의 친척이 심한 화상을 입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그 친척분을 치료해주어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의료재단인지 복지재단인지, 혹은 선교단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먼 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따뜻한 마음과 실천을 보인 것에 대해서 10여 년이 지나 아무 상관없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감사인사를 받았던 것이다.
잊고 지내던 중므라피에 갔다가 작은 박물관에서 분화의 흔적을 만나게 되었다. 2010년 11월 5일 12시 5분에 멈춰버린 시계였다. 엄청난 분화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피해를 입은 집 중의 하나가 작은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당시의 일들을 기록해 두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그 시계였다. 집은 파괴되었지만 그 집에서 쓰던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반쯤 녹아버린 유리컵과 플라스틱이 녹아버린 텔레비전, 그리고 그릇이나 수저 같은 것들이었다. 샤워실도 당시 파괴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몇 가지 사진 자료를 보면서 무섭다고 나가자고 해서 미리 나왔는데 나와서 생각하다 보니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동네보다 그저 몇 킬로미터 아래에 살고 있고 지난번 분화는 불과 10여 년 전이다. 당시의 피해자들도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을 살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곳 족자카르타 지역은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지역이다. 므라삐 화산은 가장 활발한 화산이지만 그 주변은 인도네시아 제일의 곡창지대 중 하나이다.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있으니 왕국이 발달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것이다. 힌두 왕국이 들어섰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사원인 쁘람빠난이 세워졌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가 세워졌다. 잊혀진 사원이었던 보로부두르는 비교적 근래에 서양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복원되었는데 두 사원이 각각 므라삐 화산의 동남쪽과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두 사원 외에도 족자카르타 인근에 여러 힌두 사원들과 불교사원들이 있다. 자바의 중남부 지역은 사일렌드라 왕국과, 불교-힌두 마타람 왕국, 이후의 이슬람 마타람 왕국을 거치면서 자바 역사에서 계속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마자파힛 제국의 출현으로 자바의 중심지가 동쪽으로 이동한 이후로는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재미있게도 마자파힛은 힌두(불교) 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마자파힛 시대에도 관리들의 상당수는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마자파힛이 패망하면서 힌두 왕족은 예술가들과 함께 자바의 동부에서 바로 옆의 섬인 발리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유독 발리에서만 힌두교가 우세한 이유이다.
어쨌든 자바의 중부에서 동부로 그 중심지가 옮겨지게 된 것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보로부두르 건축을 위한 노역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주해서 인구가 줄어 힘을 잃었다는 설과 화산의 분화로 인해 사람들이 이주했다는 설 등이 있다. 위험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도 신기한 건, 아직도 그렇게 가까운 곳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화산이 터지면 죽을 수도 있는 위치에 말이다. 그런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을 피하는 건 오버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진과 화산이 걱정이라면 인도네시아에 살 수 없고, 한국도 언제나 북핵의 위협이 있으니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일 것이다. 피해자들은 시계가 멈춰진 그 시간에 마음을 두고 살면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그렇다고 어디론가 쉽게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그저 또 매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곳은 아무 데도 없으니 말이다. 시계가 멈추면서 고통이 시작되었을 텐데 그것이 쉽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그 시간에 누군가를 잃은 슬픔과 언젠가 또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곤 할 텐데 그건 쉽사리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어쩌면 남은 삶 동안 오롯이 그 고통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