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ke Apr 23. 2022

술탄국에서 누리는 종교의 자유

현재 거주 중인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신자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가 있는 세속 국가이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라고 하기는 어려운 게 무종교의 자유와 법적으로 허가되지 않은 종교를 가질 자유는 없다. 2억 7천만이 넘는 국민 모두는 이들의 신분증에 종교를 표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로 간주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 수십만 명이 정당한 재판 없이 처형된 일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은 대단한 공포이고 그런 이유로 이들은 모두 정부가 허가한 이슬람, 개신교,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여섯 개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한다. 결혼을 할 때도 같은 종교 간에 하거나 한쪽이 개종을 해야만 하는데 이는 종교가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도구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300개가 넘는 종족, 그것보다 훨씬 많은 언어가 있는 지역이 보니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에게는 이를 하나로 묶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말레이 족이 사용하던 말레이어를 국어로 정하고 동쪽 절반의 기독교 지역 분리독립을  두려워하여 이슬람주의자들과의 내전을 거쳐  다른 종교들을 인정했다.


1억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쥬류 민족집단인 자바족은 국가통합을 위해 언어와 종교를 양보했다. 그리고 독립 시의 임시수도였던 족자카르타는 이러한 다양성을 위한 실험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족자카르타의 술탄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선 공로로 이 도시의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족자카르타 시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몇 개의 군은 족자카르타 특별주로서의 지위를 누린다. 술탄은 세습되며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실질적 자치권을 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이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인도네시아의 국가-종교의 관계에서 이슬람이 다른 종교를 억압하지 않는 것이 국가의 안녕을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가자마다 대학을 비롯해서 이곳의 많은 연구기관들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독교의 사순절과 이슬람의 라마단이 비슷하게 겹치게 되었다. 한 펠로우의 집에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무슬림은 라마단을 보내는 중이었다. 무슬림은 해가 진 다음부터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같이 식사를 했다. 한국의 장로교 목사, 미국의 침례교 목사, 인도네시아의 개혁교회 목사, 제수잇 수녀, 대학교 직원, 개신교 신학자, 이슬람 신학자, 연구차 방문한 영국 대학의 박사과정생, 연수차 방문한 미국의 학부생들, 인솔교수 등 스무 명 이상이 모여서 종교와 인종, 국가를 초월한 식사를 즐겼다. 처음엔 미국 학생들의 연수에 대해, 그리고 리드대학의 박사과정생의 연구목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곤 종교학부가 QS랭킹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교수진들은 자신들이 공부했던 맥길과 싱가포르 국립대, 에든버러 대학 등과 경쟁하기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서 놀람과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조지아와 텍사스의 자존심 대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난 이후로는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BTS와 한국 드라마, 한국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보라 해"와 같이 나도 모르는 표현들을 아미 출신의 슐레웨시의 목회자로부터 배우고 기념사진을 찍 대학교 직원으로부터 코리안 하트를 배우기도 했다. 종교사를 가르치는 교수께서는 기황후와 남산의 부장들, 명랑과 같은 드라마와 영화들을 봤다며 한일관계, 야스쿠니, 이순신 장군 등을 비롯한 한국의 역사를 물었다. 완벽한 이방인으로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했을지 모르는 모임에서 한류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특별한 식사자리였다.


종교를 연구하다 보니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보수화가 대화의 주제가 될 때 많다. 인도네시아에 ISIS 멤버가 800명을 넘었다는 논문을 며칠 전 읽었다. 우파 이슬람 정당의 의석수가 늘어나는 중이고, 온건 무슬림 단체의 보수화도 늘 관심거리다. 잊힐만하면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정치적 목적의 폭력들은 늘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이슬람의 다른 쪽에서는 여성의 권리와 다른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이곳의 쇼핑몰에는 늘 이 도시의 술탄이 쓴 현판이 있는데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들어있다. 물론 이슬람은 이를 알라로, 기독교는 이를 하나님으로, 힌두교는 이를 브라흐마 등으 이해하겠지만 정부차원에서는 국민이 갈라져서 싸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 그저 Tuhan이라는 단어로 통일해서 헌법적 정의를 시도한 것이리라.


이곳에서 종교의 자유가 사라지면 나는 추방을 당할 것이니, 이에 대한 연구는 나에게도 실존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돌아갈 나라가 있지만 돌아갈 나라가 없는 이곳의 기독교인들에겐  생존의 문제이자 구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저 어우러져서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신앙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지만 그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한 생각을 그저 빠르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시계가 멈춘 곳에서 고통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