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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Apr 02. 2022

실천의 종교

족자카르타로 이사온지 세 달이 넘었다. 공부도 잘 시작하고 복잡하던 비자 문제도 잘 해결되고 차근차근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중이다. 특히 이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는 목사로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이곳이 참 재미있는 게 모든 국민은 종교를 가져야만 하고 그 종교는 이슬람, 개신교,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여섯 개 중에 선택되어야 한다. 물론 명목상의 신앙인들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종교가 이들에겐 하나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300개가 넘는 민족(부족)이 있고 언어는 그것보다 더 많이 분화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의 거리는 자카르타에서 서울에 가는 거리만큼이나 멀다. 이를 하나로 묶어야 하는 국가적 필요가 있고 그런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독립 시 빤짜실라(Pancasila)라는 국가이념의 첫 번째 항목에 "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종의 선언을 집어넣었다. 이슬람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이 있었지만 동쪽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독교 지역의 분리독립을 우려해 첫 대통령인 수카르노는 빤짜실라를 관철시킨다. 이후로 인도네시아의 종교계는 국가 주도하의 종교 간 대화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2000년을 전후해서 경제, 민족 등의 문제로 인한 여러 갈등 상황 가운데 종교분쟁이 발생하여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자바섬과 수마트라 섬을 제외하면 이슬람이 완벽하게 압도적인 지역은 많지 않다. 수마트라 서부의 섬 지역인 니하스, 수마트라 중북부의 바탁, 깔리만딴 중부의 다약, 발리 동부의 섬들인 NTT의 숨바, 유럽이 목숨을 걸고 향료를 찾아 떠났던 바로 그 유명한 향료 제도가 있는 말루쿠, 파푸아 등의 여러 부족들은 잘 알려진 개신교 부족들이고 그 외에도 발리의 힌두교, 티모르와 NTT의 가톨릭도 그 지역에선 우세한 경우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타 종교에 대해 상당히 열려 있다. 서로 간에 배려도 강하고 종교적인 문제로 싸움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상당하다. 물론 계속해서 자살폭탄 테러 등이 일어나고 ISIS에 가입한 인원도 수백 명에 달하며 극단주의 무슬림의 수는 점점 더 증가하는 중이지만 이슬람 주류에서는 온건성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중이다. 종교가 잘못 건드려지면 국가의 존립이 위험해지니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모두가 애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슬람의 라마단이 시작됐다. 술탄이 다스리던 왕국이었던 이 도시는 여전히 열 번째 술탄이 주지사로서 관료 임명권을 포함해서 왕권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라마단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계속되는 아잔 소리, 왓츠앱 그룹에서 역시나 계속해서 울리는 라마단 기간을 위한 격려와 축하들이 익숙하지 않지만 이들의 실천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해가 진 뒤로 많이 먹기 때문에 살이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물도 마시지 않는다. 성인들만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엊그제 만났던 아저씨 한 분은 7살 때도 뿌아사(금식)를 했다고 한다. 물도 마시지 않는 뿌아사 말이다. 몰에서 쇼핑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무숄라(기도실)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공항에서도 시간이 되면 자리를 깔고 기도하는 이슬람의 신앙은 역시나 실천에서 시작되는 힘을 느끼게 한다. 기독교 역시 말로만 계시 종교, 실천의 종교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된다. 


기독교는 부활절 전의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킨다. 오래전엔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오늘날엔 영적 훈련을 하는 시기이다. 중세 서구에선 고기가 금해진 사순절 전에 미리 육식을 실컷 해 두기 위해서 카니발 기간을 두기도 했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전통에서는 흙이라는 인간 실존에 대한 인식으로서 이마에 재로 된 십자가를 그려 넣고 하루를 보내며 사순절 기간을 시작한다. 종교 간 대화와 관련한 수업을 몇 주 동안 미국의 베일러 대학 종교학과 대학원생들과 줌으로 함께 했었다. 하루는 서로 인사를 하는데 베일러의 한 여학생이 이마에 검은 십자가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시차가 하루 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선 이미 재의 수요일이 하루 지난 목요일 아침이었는데 나는 재의 수요일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를 시작하느라 신앙의 실천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그 순간 깨달아졌다. 코로나 때문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아내와 교회를 찾아 출석하기로 했다. 코로나 시국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또한 아이 둘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가능한 규모가 큰 교회를 선택했다. 한 번도 출석해 본 적이 없는 순복음 교회였는데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 속에서 역시나 실천의 힘을 발견했다. 믿음을 이성의 영역에 가둬두는 것은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신앙적인 것도 아닐 것이니 그저 실천을 통한 영적성장을 추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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