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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ul 23. 2022

종교의 미래에 대한 단상

20대 후반과 30대의 전부, 그리고 40대의 전반부를 목회 현장에서 보냈다. 지금은 직만 유지하며 풀타임 공부 중이지만, 여전히 직업란에 종교인이라는 항목이 있다면 그곳에 체크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니까.


한국에 잠시 머무르면서 종교의 미래, 특히 교회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됐다. 캐나다에서 잠깐 사역하고 들어왔을 때, 한국교회가 서구교회 같이 변하는데 이십 년 이상은 족히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목사가 명백한 의미의 직업이 되고 오순절 교회와 복음주의 교회, 혹은 이민자 교회를 제외하면 교회들이 점점 약해져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처럼 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그 시간을 순식간에 당겨버렸다. 현실적으로 목회가 가능하지 않다며 젊은 목회자들은 목회 현장을 떠나고 있고 적지 않은 수의 젊은 성도들도 삶과 상황의 변화와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를 떠나버렸다. 서구 계몽주의 이후 경험된 이성주의뿐 아니라 기독교 윤리의 타락을 비롯한 여러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세계 교회가 신기해서 연구하던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멈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급격한 하강을 시작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의 가톨릭교도가 나에게 물었었다. 한국엔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있느냐고. 난 40%가 무교라고 이야기했었다. 표면적으로 전 국민이 종교를 가진 인도네시아인들의 입장에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 친구는 단호하게, 자신들의 종교는 단순한 종교 이상이라고 했다. 종교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그건 인종, 언어, 지역 등과 같은 그들의 독특성의 일부이며 그중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들에겐 분명 종교라는 말이다.


인도네시아는 백신을 맞을 때도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백신에 대한 인증이 우선된다. 가톨릭 주교회의와 개신교의 교회협의회 역시 그들의 신자들에게 여러 공지들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파트와와 공지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참으로 독특한, 종교적 세속국가이다. 난 종교인이기에 그런 상황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종교자유가 보장되기만 한다면 사실 어느 곳에서나 불편할 이유가 없다.


캐나다에서는 성도가 아닌 목사가 없어 문을 닫는 교회가 많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목사가 적어 목회자들이 순회를 해야 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반면에 한국은 늘 목회자가 과잉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교인수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목회자가 목회를 포기하는 속도가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졸업한 신학교도 불과 십여 년 어간에 경쟁률이 5:1에서 1:1로 가까이로 줄었단다. 삶과 젊음을 바칠만한 Passion이 이제는 목회직을 향하지 않는 것이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설교하러 방문한 교회에서 지도하던 청년과 부부들을 만났는데 요즘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개인적 욕심으로는 종교가 보다 확실하게 유효한 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런 곳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곳, 바로 "UTOPIA"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혁명과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서 이제 시스템으로서의 교회 혹은 종교가 힘을 다한 것은 아닐는지. 특히 그런 시대 가운데서 기독교인과 목회자들의 윤리적 타락과 일탈들이 기름을 부은 건 아닐는지.


일반적 의미의 기독교적 변증은 이제 힘을 다한 것 같으니 그저 더 좋은 사람, 더 신실한 신앙인, 더 정직한 목회자가 되는 것밖에는 달리 세상을 설득할 힘이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이 참 죄스럽고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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