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사람들은 도시의 빌딩 숲이 전통미를 헤친다고 이야기한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살기 편한 게 중요하다거나 현대미가 오히려 중요하다고도 이야기한다.
지난달 한국 방문 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왔던 경복궁 너머의 빌딩 숲은, 그러나 그저 나에게 너무나 멋져 보였다. 특별히 어떤 입장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빌딩 숲이 없는 곳에 살고 있다 보니 직관적으로 그게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경복궁 사진을 보고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분들이, 저곳이 바로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이 아니냐며 꼭 방문해보고 싶다고 댓글들을 달았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그러한 모습이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선망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와 파리의 라데팡스에 있는 광장을 걸었었던 적이 있다. 신개선문으로 불리는 광장의 타워가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광장 한쪽의 흔해 보이는 조형물이 미로의 작품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그 도시의 아우라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정작 그 문화를 만들어내는 스타(작가이건 화가이건 음악가이건)들이 그 도시의 품격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지인들이 한국 물건들을 사다 줄 수 있는지 부탁들을 했다. 주로 K-pop과 관련된 것들인데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주로 고가의 정품들이고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는 것들은 조악한 가품들이기 때문에 부탁은 하지만 정말 구매를 해 주기는 어렵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눈으로 보지 않고 사기에는 비교적 큰 액수의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아마 지인들이 원하는 것도 사실 정말 무엇을 대신해서 사다 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아는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일 지도 모른다. 문자만 주고받다가 결국 다이소에서 론칭한 한국에서 생산한 BTS의 일회용 마스크를 잔뜩 사 가지고 왔다. 혹시라도 만날 때 Made in Korea(Dari Korea) 제품을 하나라도 전해줘야 하니까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상당수는 한국의 현대문화를 선망하다 전통문화와 역사에까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BTS를 좋아한 덕에 경복궁을 알게 되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까지 관심을 가진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나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택시를 타면 늘 신태용 감독과 박지성 선수, 손흥민 선수를 이야기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배드민턴 이야기도 꺼낸다. 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여전히 한국 배드민턴이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을 가지고 있나 보다. 어제 한국 선수가 중국 선수를 이겼는데 봤느냐, 와 같은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마다 애국심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뜨끔할 때도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아는 한국 선수의 승리 소식을 내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따지고 보면 한국의 국력, 특히 한국문화의 존재감과 스포츠나 경제에서의 위상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이 가진 영향력이 세계인들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E.H. 카"가 말했던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경복궁만 나온 고즈넉한 전통미보다 빌딩 숲과 어우러진 현대미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선망하는 것은, 앞으로 역사가 될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역동성이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