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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02. 2021

필리핀 쓰레기 마을 속 보석들

톤도(Tondo)를 떠나온 아이들

사를 위해 필리핀의 불라칸이라는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계 3대 빈민촌으로 일컬어지는 톤도에 살다가 정부 정책에 따라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 주간 동안 한국에서 함께 간 아이들과 그곳의 학교에서 k-pop과 태권도 공연도 하고 한국과 필리핀의 아이들이 모두 같이 어울려서 길거리 농구도 했다. 장판이 없는 집의 장판도 깔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을 방문해 랜턴을 선물하기도 했다.


랜턴을 선물하러 들어간 집은 대낮인데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창이 없었던 건지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 앉아서 인사를 나누는데 방 한가운데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갓난아이가 해먹같이 걸린 요람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다시 불을 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어 현지 코디네이터 선교사님께 비용을 드릴 테니 배터리를 충분히 사서 계속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길 한복판에 테이블을 깔아놓고 같이 밥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면서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지 스태프들이 분주해졌다. 검은색 두건을 쓰고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든 자경단이 이곳저곳을 탐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약상을 찾는 것이리라. 함께 온 팀원들을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긴장감 속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두테르테 정권 초기 마약과의 전쟁에 열심일 때다. 소탕작전이 시작되던 바로 그 시기라 뉴스에도 이제 막 그 잔인한 즉결처형이 소개되었을 때다. 전 세계가 그로 인해 떠들썩해질 주간에 하필 그곳에 있게 된 것이었다.


자경단이 그 지역을 떠나고 얼마지 않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집에서 동네 주민 한분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날 다른 지역에 가서도 몇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들리는 이야기는 그들이 잡범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되는지, 거물 마약상인지 잡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범인 한 명을 검거, 혹은 사살할 때마다 자경단이 받게 될 몇 백 불의 돈이 결국은 사람의 목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심란한 상황들을 다 겪은 후 한국에 안전하게 돌아온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을 때, 그곳 아이들이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에 대한 신기함, 함께 만나서 나눴던 짧지만 좋았던 시간들, 부자나라 사람들에 대한 동경 등이 섞여서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그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으리라.


함께 갔던 한국의 아이들 중 몇은 미국과 호주에서 유학하던 중이었다. 북유럽 여행을 취소할 수 없어 북유럽에서 바로 필리핀으로 넘어온 아이도 있었다. 함께 불라칸에서 한 주간을 보냈지만 톤도에서 온 그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함께 해서 너무나 좋았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결코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톤도에서도 치킨을 판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의 치킨엔 이빨 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치킨을 다시 튀겨서 파는 것이다. 누군가 버린 물건들과 음식물들이 쌓인 거대한 쓰레기장에서 먹을 것을 찾고 돈을 버는 곳이다. 가끔은 그 치킨으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새로 지은 동네로 이주했지만 먹고살 길이 없어 눈을 뜨면 다시 돈을 벌기 위해 톤도로 향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들 앞에 놓인 미래인 것이다. 동네 형들이나 누군가의 아빠는 그들 정부가 고용한 이들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협박을 당하고 버림을 받으면서, 그들 앞에 놓인 삶을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그곳의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이 보석처럼 맑았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그 상황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그들의 행복을 누릴 줄 알았다.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할 줄 알았고 그 봉사를 통해 기쁨을 경험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혈안이 된, 세상에 찌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선함을 그 아이들의 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게 된 그 아이들의 깨끗함을 보니 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그렇기 때문에 살아갈 만 한가보다. 함께 노력하고 헤쳐 나가다 보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찾아질 것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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