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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Sep 27. 2021

맞다, 삶은 그저 여행일 뿐이다

Williams, Arizona

캐나다에 2년 정도 거주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는데 2주 정도 미국을 여행할 만한 시간이 생겼다. 첫 아이가 그때 막 돌이 되었을 때라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기간 동안 쉬다가 귀국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사람일이라는 게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술, 담배, 도박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가족이 Sin City에서 오랜 기간 머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주도 채우지 못하고 차를 렌트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로 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반납하기로 하고 우리는 서쪽이 아닌 동쪽의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그랜드 캐년은 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운전을 해서 사막을 지나는 경험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아이와 아내가 힘들어하기 시작했고 짜증과 조용한 다툼이 반복됐다. 그렇게 우리는 그랜드캐년 근처에 있는, U.S. Route 66에 위치한 williams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이코노 랏지라는 저렴한 숙소에 짐을 풀고 이 오래된 타운을 거닐었다. 코인빨래방에서 밀린 빨래도 하고, 포크 음악을 연주하는 서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내일은 그랜드캐년 관광을 해야 하니 일찍 쉬어야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아이가 먹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장시간 차에 타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먹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캐나다와 한국 사이에 끼여있는 두 주간의 시간이었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시간이기도 했고 바쁜 상황 가운데서 여행자보험도 들지 못했다. 전화도 와이파이 용도로만 쓰고 있는 중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일단 그 작은 도시에 머물러 보기로 했다.     

Williams, Arizona


우리는 그렇게 예기치 않게 애리조나의 윌리엄스에서 사흘을 머물게 됐다. 인구가 30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이다 보니 머물면서 할 것도 없다.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사고 아이를 안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밖에는 할 게 없었다. 그러다 한 기념품 상점을 구경하게 되었다. 옛날 스타일의 상점이었다. 그랜드캐년과 관련된 것들과 66번 도로에 관련된 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인두로 글을 쓴 액자들도 많이 있었고 No1 Daddy와 같은 기분 좋은 글귀를 넣은 자전거 번호판도 있었다. 딸의 영문 이름인 Evelyn이 각인된 번호판을 하나 사고 다른 여러 기념품들을 둘러보다가 액자의 글귀 하나를 발견하고는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마음을 울리는 한 문장이었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 들었던 많은 후회들과 걱정들이 완화 혹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다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 계기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그랜드캐년에 대한 기억보다는 윌리엄스라는 작은 도시에 대한 기억이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무언가를 향해 정신없이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도 결국엔 세계와 역사라는 큰 차원에서 생각하자면 여행자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아무리 여행지 곳곳에 자신의 존재를 낙서 혹은 사진으로 각인하려고 해도 그 개인의 기록은 결국 세상의 흐름 가운데서는 흘러가는 무언가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노력도 확고한 업적을 통해 누군가에게 각인되려는 것보다는 좋은 여행자로 머물다 깨끗하게 떠나는 것에 더 초점을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이 내가 윌리엄스에서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느끼던 중에 나에게 다가온 에머슨의 격언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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