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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Sep 28. 2021

Bali(신들의 섬)

Photo by Aron Visuals(Pixabay)

흔히들 발리를 신들의 섬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힌두신들을 숭배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붙여진 별명일 것이다.


세계 최다의 이슬람 신자가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서부에 해당하는 자바와 수마트라, 깔리만탄(보르네오) 등의 섬들은 무슬림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기독교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동부인 말루쿠, 누사 뜽가라, 파푸아 지역 등은 기독교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 분포는 본래 인도와 아랍상인들과의 교류뿐 아니라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의 침략과 관계된 복잡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물론 그 속엔 뜨거운 열정을 지닌 각 종교 선교사들의 헌신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 발리는 그 두 지역의 중간에 끼여있는 인도네시아의 섬이며 주이다. 유일하게 힌두교가 주류 종교인 지역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국가가 정한 여섯 개의 종교(이슬람, 개신교,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를 선택해야만 하는 국가이다. 근대 인도네시아 건국 초기에 공산주의로 인한 극심한 혼란이 있었던 터라 무종교인은 공산주의자로 생각되며 인도네시아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이 여섯 개의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각 종교의 주요 축일은 인도네시아 전체 지역에서 공휴일로 지정되어 존중받고 있으며 발리의 경우 힌두교의 새해에 해당하는 Nyepi day, 곧 침묵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날은 발리에서의 관광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두가 침묵 속에서 지내는 날로 알려져 있다. 녀삐 데이가 끼여 있는 동안엔 절대 발리로 휴가를 떠나지 말라고 말릴 정도이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 맞은 휴가를 발리로 떠났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처럼 가뿐한 마음과 비용으로 발리에서 두 주를 보내게 되었다. 서부의 이슬람과 동부의 기독교 모두 아브라함 종교와 유일신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발리는 정말 많은 신들이 존재하며 숭배받고 있다는 것을 지나는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국문화로 치면 무속신앙처럼 곳곳에 신들에게 바쳐진 음식들이 있고 향이 있으며 이러한 특징들이 이국적인 분위기와 두통을 동시에 유발했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좋은 운전기사와 하루를 동행했는데 차 안에 피워놓은 향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어쩔 수 없이 렌터카를 바꿔야만 했을 정도이다.

 

신들을 위한 일에는 늘 진심이며 우선인 이들이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우리 집 정원에 자꾸 누군가가 와서 꽃을 따가곤 했다. 심지어 내가 보고 있는 동안에도 당당하게 와서 꽃을 따곤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들이 그들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의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다소 이해가 되긴 했다. 그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들의 신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힌두 왕국, 불교왕국, 이슬람 왕국의 흥망성쇠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힌두교는 자바섬 중부에서 발리섬까지 퇴각을 거듭했다. 계속해서 도망가다 보니 결국은 지배계층만 남았기 때문에 발리의 힌두교는 상위 카스트만 남게 되어 인도와 같은 카스트제도가 남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많은 패배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의 힌두교도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면서 그 아름다운 섬에서 자족하며 살게 된 것이다. 


울루와뚜


짐바란과 비치웍(꾸따)

발리는 참 다양한 매력을 가졌다. 울루와뚜 절벽사원과 같은 절경도 있고 짐바란의 석양을 보며 먹는 해산물과 같은 기억에 남는 식사도 있다. 영어가 인도네시아어보다 더 많이 쓰이는 현대적이며 서구적인 느낌의 꾸따 해변도 있고 동양과 서양, 혹은 인도네시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은 유니크한 문화를 가진 우붓도 있다. 단순히 멋진 호텔과 리조트의 풍경, 워터파크와 서핑, 그리고 다이빙 등으로만 기억하기에는 훨씬 다양한 문화적 매력을 지닌 곳이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맞은 첫 번째 휴가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어보다는 영어가 편할 때였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또한 발리의 다른 지역에 비해 꾸따 지역은 영어가 훨씬 편하게 사용되는 곳이었다. 운전을 도와준 기사분에게 왜 그런지 물었다. 그는 처음 만난 기사분과 달리 이슬람교도였다. 향을 피우지 않아 아내 또한 두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자바 출신이라고 했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꾸따 지역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꾸따 지역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서퍼들도 많고 호주나 뉴질랜드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사람들도 정말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주로 영어가 쓰이는 것이다. 술을 쉽게 살 수도 없는 자바 지역과 달리, 개조해서 바(bar)로 만든 차량에 허리를 묶고는 맥주를 마시며 해변도로를 달리는 서양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잘하면 더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또한 그들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고, 면허 없이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시나 세상은 힘과 돈의 논리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어느 곳에 가든지 그들의 종교와 문화, 언어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중 하나는 바비 굴링이다. 바비는 돼지, 굴링은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의미한다. 껍질까지 바삭하게 익힌 새끼돼지 바비큐라고 할 수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먹는 바비 굴링, 동시에 소고기를 먹지 않는 발리인들의 땅에서 먹는 바비 굴링은 나로 하여금 묘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묘하게 다르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인도네시아의 상황이며 문화인 것이다. 긴 시간 우여곡절 끝에 그 다름을 인정하는 연습을 거듭하여 만들어진 국가적 정체성과 문화적 특징 이리라 생각을 했다.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인도네시아의 모토와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사는 동네에는 없는 마포갈매기를 관광지인 발리에서 발견하고는 그 식당에 들어가 맛있게 한국식 바비큐를 먹으면서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는 이게 최고다, 라는 생각을 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며 문화와 음식은 정말 떼놓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었다. 이것이 발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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