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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06. 2021

아내의 소소한 일탈

인스타그램

인도네시아에 본격적으로 코로나 환자가 많아지면서 아내와 아이들은 감금 아닌 감금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잠깐 괜찮아져서 가까운데 바람 좀 쐬고 오려고 하면 꼭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 학교도 문을 닫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고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분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아내의 독박 육아가 시작되면서 가족 모두의 스트레스는 함께 증폭됐다. 


아내는 거의 우울증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사실 그때는 주변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여기 있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들어갔다가 비자 문제로 인도네시아 입국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몇 집 건너 한 집씩은 코로나 이산가족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잘 통제되던 상황이었는데 인도네시아는 확진자 수가 세계 1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주변의 한국인들도 적지 않은 수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현지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곳에 계시던 한국분들이 코로나로 돌아가시고 증세가 심각해서 에어 엠블런스를 타고 한국에 들어가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다들 속만 타들어가던 시기였다. 


모든 것이 혼돈스러운 그때 아내가 사이버 대학에서 인도네시아어와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뭐라도 잡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남편 따라다니느라 대학원을 중퇴했었는데 잘 생각했다고 격려해 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집안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사실 이렇게 많은 집안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아내는 인도네시아어와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면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그리고 페이스북을 같이 시작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이곳의 학생들에게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라고 역시 격려해 주었다. 가족 모두 그렇게 무언가에 힘을 쏟아야지만 이 어려운 시기를 같이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이러한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아내의 원래 모습은 아니다. 항상 평균치의 삶만을 추구했던 아내를 봐왔던 나에게는 아내가 상당한 일탈을 감행한 것으로 느껴졌었다. 소소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던 아내의 모습 속에서는 분명히 일탈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몇 달 꾸준히 하다 보니 배우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페이를 할 테니 개인 레슨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경우도 있었고 현지 회사들에서도 강의와 번역이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4만 명이 넘게 되었다. 


모든 연락들에 대해서 그냥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 무료로만 진행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는 하는데, 적지 않은 액수를 불렀다고 아내의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집에만 갇혀서 자아존중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인정받게 되고 그로 인해 코로나 블루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함께 살아갈 때 더 큰 힘을 얻는 것 같다. 나 혼자 더 큰 것을 누리겠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함께 일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을 당하지 못한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구약 전도서의 말씀처럼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칠 때 우리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아내를 보면서, 그리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오히려 스스로가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 모습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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