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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10. 2021

내 딸이 안에서 진통 중이네!

첫 아이를 낳을 때 아내가 20시간 넘게 진통을 했다. 진통이 심해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병원에서는 아직 이르다며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진통의 인터벌이 더 짧아지면 오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하는 건지... 산후조리를 위해 장모님께서 와 계셨다. 아내가 진통하는 것을 보며 걱정하시는 장모님의 눈치가 아주 많이 보였다. 죄인이란 이런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 병원에 갔을 땐 무조건 병실을 달라고 우겼다. 다행히 이제 들어가도 된다며 병실로 안내했다. 출산용 침대 하나, 아기 침대 하나, 샤워실, 보호자를 위한 널찍한 소파와 TV가 있었다. 의료보험이 없으면 30,000불도 나올 수 있다던데 병원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들어왔다. 수동적으로 앉아 있던 나에게 능동적으로 출산의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남편이 뭐 하고 있느냐는 듯, 나를 쏘아봤다. 생소한 이 분위기에서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눈치를 계속 보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나에게 빨리 가서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출산인데 밥을 먹고 오라니(이후에 나에게 닥칠 일들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었다.) 어쨌든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병실을 나와서 산부인과 프런트를 지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문밖에 바로 있는 벤치에 장모님과 처형이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어머니, 식사하러 가시죠? 나를 쏘아보신다. 내 딸이 안에서 진통 중이네! 느낌이 싸하다. 네 어머니, 하고 다시 산부인과 병동으로 들어왔다. 다시 간호사들이 앉아있는 프런트를 지나서 아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걱정하던 대로 대단히 권위적인 병실 담당 간호사가 나에게 밥을 먹고 왔냐고, 쏘아붙인다. 이렇게 괴로울 수가. 밥을 안 먹고 출산을 어떻게 도울 거냐고, 나를 또 혼낸다(당최 무슨 말인지.)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프런트 앞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바라보며 고민을 해보지만 장모님이 계신 저 문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딸이 안에서 진통 중이네! 남편으로서 참으로 죄송스러워 듣기 두려운 말이지 않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도는 나를 간호사들이 빤히 쳐다본다. 그 앞에 조그만 바가 하나 있고 커피와 비스킷들이 놓여 있다. 프런트 간호사에게 커피와 비스킷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짠~하게 쳐다보면서 먹으라고 한다. 그 자리에 서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비스킷 하나를 입속으로 집어넣고는 다시 병실로 들어간다. 또다시 시작된 병실 간호사와의 기싸움. 다행히 이번에는 병실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모르핀과 에피듀럴(무통주사)을 맞아가며 아내는 출산을 위한 사투를 벌였다. 마취과 의사의 복잡한 설명을 들어가며 나는 아내의 척추에 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간호사는 나를 마치 막내 간호사 부리듯이 부렸다. 나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아내를 잡기도 하고 다리를 들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출산을 위해 의사가 들어왔을 때가 돼서야 그 긴장감이 멈췄다. 의사는 아주 잠깐 동안 병실에 머물렀다. 그리고 축하한다며 아이를 안겨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참 아이러니인 것이 긴 시간 간호사와 한 팀이 되어 사투를 벌인 후, 우리 사이엔 일종의 팀워크가 생겼다. 나는 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그녀에게 연신 Thank you!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을 함께했던 사이가 아닌가? 

         



출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거대한 장벽과도 같이 장모님이 처음과 동일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다. 도대체 몇 시간을 그 딱딱한 벤치에서 목석같이 버티셨던 건지.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고 말씀을 드리니, 그때서야 안도하신다. 그 전쟁 같던 무박 2일 동안, 내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은 인상은 바로 그 벤치에서 나를 올려다보시며 비장하게 "내 딸이 안에서 진통 중이네!"라고 말씀하시던 장모님의 모습이었다. 외국인지라 병원 관계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없어서 그저 벤치에 앉아서 초조하게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그 엄마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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