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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12. 2021

선한 사마리아인과의 만남

Las Vegas

차량을 렌트할 때마다 운이 좋았다. 한 번은 먼 곳으로 짐을 옮길 일이 있어서 꿈에 그리던 포드의 F-150을 렌트했다. 막상 차량을 픽업하러 가니 F-250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 주었다. 대단히 깊은 주차장에 들어갔다가 천장이 닿아서 백으로 나오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트럭을 몰고 짐을 옮기고는 종횡무진 여행을 하던 기억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또 한 번은 미국에서 아반떼 사이즈의 소형차를 렌트했는데 캠리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줬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차를 받고 얼마 못 가 타이어가 펑크 났다. 고속도로 입구를 못 찾아서 어떤 공단 지역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펑크가 난 것이다. 하필 전화도 안 되고 날씨는 덥고 아이는 울고 있었다. 주말이고 차가 지나갈만한 지역도 아니었다. 다행히 시동이 꺼진 건 아니라서 아내와 아이를 차 안에 두고 밖에서 하릴없이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었다.  


처음엔 짜증이 났는데 나중엔 겁이 났다. 전화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신용카드도 없는데 하필 현금은 많이 들고 있었다. 도와 달라고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면서도 총든 강도라도 차에서 내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도와주기엔 상대방도 걱정되었으리라. 고속도로 진입로 옆 공장 지대에서 차를 세우고 있는 동양인이니 말이다.  내가 나가 있으니 차를 안 세워주는 것 같다고 아내가 잠깐 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임무교대를 함과 동시에 트럭이 한대 멈춰 섰다. 이건 분명히 작은 기적이었다. 타이어를 고치는 트럭이 섰던 것이다. 메케닉 한 분이 내리시더니 순식간에 스페어타이어로 바꿔주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도착한 타이어 숍에서 차량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는 우리를 돕기 위해 같이 머물러 줬다. 렌트 차량인 걸 알고는 회사에 먼저 전화해 보라고 했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하니 차를 바꿔줄 테니 가지고 오라고 했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어쨌든 타이어 가게에 설명하고 차를 돌려받은 후 아까 도와주셨던 분에게 사례를 하려고 했더니 극구 사양했다. 자기는 비번인데 지나가다가 우연히 우리를 봤고 도와줬던 것뿐이란다. 일로서 도왔어도 눈물 나게 고마운 상황인데 오프인 상황에서 도왔던 거고 우리 문제가 잘 풀렸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그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스페어타이어로 바꿔주고, 타이어 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한참을 같이 있어줬는데 그냥 도와준 거란다. 메케닉들을 부르면 출발해서 고치러 오는 동안에도 비용을 청구하는 게 그 동네 룰인데 그 더운 데서 2시간 가까이 우리를 도와줬는데 그저 좋은 여행 되라며 인사하고 가버렸다. 그분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달라 보이고 세상도 다르게 보였다.  


What a wonderful world!  


렌터카 대리점에 가서는 다시 모드를 바꿔서 화를 내며 항의했더니 쿨하게 열쇠를 주면서 타고 가라고 한다.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주차장으로 갔다. 리모컨을 누르니 포드의 파란색 익스플로러 한 대가 반짝반짝 인사를 한다. 소형차를 빌렸는데 중형차를 거쳐 SUV로 업그레이드가 됐다. 일주일이나 빌렸는데. 상했던 기분은 180도 바뀌어 아주 행복해졌다. 그 차를 타고 모하비 사막을 지나 그랜드 캐년까지 갔다가 샌프란시스코까지 갔다. 네바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를 거치는 긴 여행을 했던 것이다. 그 한 주간의 여정 동안 작은 차로 여행을 했으면 정말로 위험했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차가 업그레이드되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그러나 역시 시간이 지나서 기억나는 것은, 우리를 도와줬던 분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런 부류의 분들을 지칭하기에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큰 도움을 줬는데 인사도 제대로 안 받고 쿨하게 떠났다. 국적, 인종, 학연, 지연 그 어떤 것도 매치될 일 없고, 살면서 다시 만날 가능성도 사실상 없는데 그저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줬다. 정말 사심이 없는 거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생각을 해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교훈이 되는 분을 만났고, 나 또한 주어진 상황에서 그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먹고살아야겠다, 하는 다짐을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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