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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Dec 03. 2021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카페 바타비아에서 커피를

Jakarta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를 하나만 꼽는다면 그건 분명 카페 바타비아일 것이다. 커피의 맛이나 손님들의 만족도 같은 건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카페가 위치한 건물의 역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카페를 알고 있고 카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서구의 유명 언론에서 정하는 카페(레스토랑) 순위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커피를 마셔보니 커피 때문에 유명한  아닌  것 같다. 


카페가 들어선 건물은 1830년대에 지어졌는데 원래는 사무실, 숙소, 창고 등의 목적으로 만들고 쓰이던 건물이다. 비교적 근래에 카페가 되었다고 들어서 계산을 하면서 언제부터 카페로  영업했는지 물어보니 브로셔를 하나 준다. 28주년 이벤트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건물이 지어진 연도에 비하면 길지 않아서 놀랐다. 그래도 파타힐라 광장 주위에서는 옛 총독부 건물인 현재의 역사박물관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이며 유일한 사유지라고 하니 이 카페가 가진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바타비아라는 이름은 네덜란드 식민정부 자카르타를 부르던 이름이다. 구시가를 의미하는 꼬따 뚜아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인도네시아 지배를 위한 인프라가 들어서 있다. 자카르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은 원래  자야 카르타, 순다 끌라빠 등이었는데 네덜란드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바꿔  붙인 이름이 바로 바타비아다.  지금의 건물을 구입해서 카페로 개조한 인물도 호주 국적의 사람이었다고 하니 기분 좋은 이름이나 역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서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비싼 곳엘 잘 안 가서도 그렇지만 호텔 식당 등에서 뭔가를 주문해도 깜짝 놀랄만한 청구서를 받 일은 별로 없다. 물가 자체가 한국보단 확실히 저렴하다. 카페 바타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식당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생각하면 지불할만한 값이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2층으로 안내하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1층은 흡연석이다. 너무 더워서 바로 들어왔는데 카페보다는 식당 느낌이 더 강해서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음식으로 주문했는데 나시고랭과 사테는 맛있었고 다른 건 보통이었다. 다녀와서 리뷰를 몇 개 찾아보니 파타힐라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창가 자리가 핫하다고 한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긴 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 역시나 코로나의 위력인지 밥을 먹는 내내 2층 전체에 우리 가족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광장에서는 자전거를 대여해 탈 수가 있는데 식민지 시대의 느낌이 나는 모자를 쓰고 탈 수도 있다. 카페에 들어가면서 동영상을 찍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두 명의 젊은 여성분들이 지나갔다. 스마트폰을 잠깐 치우면서 먼저 지나가라고 하니 아니란다. 오히려 거기에 찍히고 싶어서  V 표시를 하며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의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담기는 걸 특별히 싫어하지 않는다. 가끔은 찍히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분들이 뭔가를 하는 모습을 찍을 때도, 찍어도 되는지 조심해서 물어보고 되도록 얼굴이 나오지 않게 찍고 있는데 막상 보면 오히려 사진에 담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곧 강해 질 테니 이것도 길게 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런 부분에 많이 예민하지 않아도 돼서 편한 부분이 있다.


카페 바타비아에서 파타힐라 광장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프랑스의 역사학자들인 아날학(Annales)의 주장처럼 사람은 역시나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우리 인간이 뭔가를 대단히 지배하고 정리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건 착각일 수도 있겠다. 카페 창문으로 보이는 저 역사박물관 건물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본부 건물이었으니 경복궁 앞에 있던 조선총독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 사이의 파타힐라 광장은 포르투갈의 침략으로부터 자카르타를 보호했던 파타힐라의 이름을 따른 것이라 하니 또한 국가정체성과 자부심을 보여줄 만한 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식민지의 상징적 장소인 꼬따 뚜아의 상징적 건물인 이 카페도 호주 사람이 꼬따 뚜아의 유일한 사유지로 사들이고 서양식 카페로 만들어서 영업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각자 자신들의 이상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 가고 싶었겠지만 인간은 늘 상황 앞에서 약자가 된다. 세상과 삶의 복잡한 요소들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상황을 지혜롭고 바르게 정리할 능력이 언제나 부족하다. 때로는 정부나 개인이, 혹은 시민사회나 집단지성이 그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분노와 푸념을 내뱉으며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애들을 쓰지만 결국엔 돌고 돌아 원점이 되는 것이 세상이고 우리 인생일 경우가 많다.


역사와 정의, 평등과 같은 복잡한 생각들은 접어두고 비겁하게도 그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며 밖의 경치를 즐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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