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시간이 생겨도 결국 새벽에 일어나게 된다. 루틴이 이렇게 무섭다.일어난 김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봤다. 6시가 안된 시각이라 문을 연 곳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식당들마다 안에서는 아침 장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젊은 사람들도 출근길이 바빠 보였다. 계속해서 관리하기 때문에 수영장이나 정원은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른 시각에 보니 더 깨끗하다. 생각해보니 더운 지역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이야기도 지독한 편견이다. 우리 아이만 해도 이곳 학교를 다닐 땐 아침 7시가 등교시간이었다. 학교 앞에서 아이들 안전지도를 하는 경비분들(샅빰, satpam)이나 선생님들은 훨씬 이른 시간에 나와 준비를 했었다.열대지방의 아침 냄새를 맡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또 약간씩 길을 헤매며 산책을 하러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로비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나가니 상가가 이어진다. 장사 준비로 한창인 곳들도 많고 아직은 문을 열 생각이 없는 곳도 많다. 그렇게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서 정원으로 내려갔다. 철문을 닫아 놨는데 다들 쪽문으로 다니길래 나도 그리로 들어가 봤다. 연못에 물고기들도 돌아다니고 새들도 지저귄다. 망고나무에 열매도 달렸고 산책할 맛이 난다.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수영장 쪽 문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네 동으로 둘러싸인 중정 형태라서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니었는데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가며 사진도 몇 장 찍었더니 시간이 꽤 지났다.
얼마 만에 혼자 조용히 갖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아졌다. 가끔은 왜 달리는지 모르고 다른 이들을 따라 달리는 경우가 있다. 그 가끔이 자주가 되고, 그게 결국 내 인생의 모습이 되었다고 느낄 때, 한 번쯤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당연히 멈추는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언제나 문제는 상황인 것 같고 경제인 것 같지만, 결국은 우선순위와 결단의 문제다. 안정적인 걸 추구하는 아내 또한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니 고마울 뿐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라는 큰 결단을 한 걸 두고 주위에서도 걱정이 많고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조금은 차갑게 일단 선택한 길을 가겠노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하고 맞은 첫 아침이다. 걱정이 산더미 같을 수도 있고, 후회가 몰려올 수도 있는 아침이지만 역시나 평온한 걸 보니 틀린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오후에 다시 나간 바닷가에서 보니 바다와 하늘이 참 예쁘다. 한쪽으론 어선 뷰, 다른 쪽으론 유람선과 빌딩 뷰다. 개인적으로 어선 뷰 쪽이 보기에 좋다. 물론 가장 멋진 건 하늘과 구름이다. 모든 이들의 세상도, 나와 가족의 삶도 저렇게 맑고 깨끗한 푸른색이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