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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Dec 02. 2021

산책, 자카르타에서의 첫날 아침

쉴 시간이 생겨도 결국 새벽에 일어나게 된다. 루틴이 이렇게 무섭다. 일어난 김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봤다. 6시가 안된 시각이라 문을 연 곳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식당들마다 안에서는 아침 장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젊은 사람들도 출근길이 바빠 보였다. 계속해서 관리하기 때문에 수영장이나 정원은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른 시각에 보니 더 깨끗하다. 생각해보니 더운 지역 사람들게으르다는 이야기도 지독한 편견이다. 우리 아이만 해도 이곳 학교를 다닐 땐 아침 7시가 등교시간이었다. 학교 앞에서 아이들 안전지도하는 경비분들(빰, satpam)이나 선생님들은 훨씬 이른 시간에 나와 준비했었다. 열대지방의 아침 냄새를 맡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약간씩 길을 헤매며 산책을 하러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로비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나가니 상가가 이어진다. 장사 준비로 한창인 곳들도 많고 아직은 문을 열 생각이 없는 곳도 많다. 그렇게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서 정원으로 내려갔다. 철문을 닫아 놨는데 다들 쪽문으로 다니길래 나도 그리로  들어가 봤다. 연못에 물고기들도 돌아다니고 새들도 지저귄다. 망고나무에 열매도 달렸고 산책할 맛이 난다.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수영장 쪽 문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네 동으로 둘러싸인 중정 형태라서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니었는데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가며 사진도 몇 장 찍었더니 시간이 꽤 지났다.   


얼마 만에 혼자 조용히 갖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아졌다. 가끔 왜 달리는지 모르고  다른 이들을 따라 달리는 경우가 있다. 그 가끔이 자주가 되고, 그게 결국 내 인생의 모습이 되었다고 느낄 때, 한 번쯤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당연히 멈추는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언제나 문제는 상황인 것 같고 경제인 것 같지만, 결국은 우선순위와 결단의 문제다. 안정적인 걸 추구하는 아내 또한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니 고마울 뿐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라는 큰 결단을 한 걸 두고 주위에서도 걱정이 많고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조금은 차갑게 일단 선택한 길을 가겠노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하고 맞은 첫 아침이다. 걱정이 산더미 같을 수도 있고, 후회가 몰려올 수도 있는 아침이지만 역시나 평온한 걸 보니 틀린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오후에 다시 나간 바닷가에서 보니 바다와 하늘이 참 예쁘다. 한쪽으론 어선 뷰, 다른 쪽으론 유람선과 빌딩 뷰다. 개인적으로 어선 뷰 쪽이 보기에 좋다. 물론 가장 멋진 건 하늘과 구름이다. 든 이들의 상도, 나와 가족의 삶도 저렇게 맑고 깨끗한 푸른색이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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