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ke Oct 19. 2021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처음엔 브런치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가끔 어떤 내용을 검색하다 보면 글이 유난히 깔끔할 때가 있는데, 거기에 브런치라고 쓰여 있어서 글들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지나가곤 했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먼저 공부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건 코로나가 한창일 때였다. 인생에 대해서, 하는 일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고, 기독교적 용어로써의 "소명"을 다시 점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전반적인 삶의 방향성을 점검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신학기반인 내가 일반대학에 지원한 이유는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이 이곳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수업을 따라갈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 on campus 하면서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었는데  그게 바로 족자카르타에 있는 가자마다 대학교의 대학원(종교학 박사과정)이었다. 종교학자와 이슬람 신학자, 개신교 신학자가 코티칭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학문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풀타임으로 목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플 점수와 추천서, 프로포절 등을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서류를 다 준비해서 제출하고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줌으로 면접을 봤다. 이제는 그저  Acceptance Letter를 받고 비자 준비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입학이 거부되었을 "경우의 수"에 대해서 실질적으로는 생각해 보다 보니 약간의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 초조,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민망함에 대한 걱정 등으로 며칠을 걱정하고 있으니 아내가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보라고 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종일 기다리며 버티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했던 말이라고 하는데, 귀에 잘 안 들어오다가 그날 그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에 가입을 하고 글 하나를 쓰고 작가 소개를 몇 줄 쓰고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사흘 후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갔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안내가 왔다. 그리고 며칠 동안 매일 브런치를 열어서 정신없이 글을 썼다. 생각할 시간, 걱정할 시간, 그로 인해 괴로워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정리되지 않은 글을 정신없이 써 내려가는 동안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도 정리가 되고, 쓴 글을 점검하는 동안 내가 추구하는 가치도 깨닫게 되고 내가 하려는 일들의 방향성도 더 명료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만 쓰면 될 줄 알았던 브런치 글이 꽤 늘어났다. 합격 레터가 빨리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기다리던 합격 레터를 받았다.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하고,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7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40대 중반에 박사과정을 해내야 하고, 가진 돈도 없지만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기록할 공간 하나가 생긴 것이 꽤 만족스럽다. 

작가의 이전글 인도네시아의 라마단과 르바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