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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16. 2021

인도네시아의 라마단과 르바란

어쩌면 카니발과 사순절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이 길지는 않아서 아직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명절도 그렇다. 그래도 이곳에서 몇 번 경험했던 르바란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추석이나 설 같은 분위기이긴 한데 긴 금식 후에 시작되는 명절이라 그런지 종교성과 축제, 성취감 등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이곳의 국경일은 주로 종교력들인데 가장 큰 명절은 라마단에 이어지는 "르바란"이다. 아랍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첫날을 이 둘 피트리(Eid-ul-Fitr)라고 하고 일주일 정도 휴가를 갖는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르바란에 이동을 금지했었는데 사람들은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이동을 막아도 어떤 식으로든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인지 올해의 경우 르바란 후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었다. 보통 한국인들 집에 고용되어 있는 가정부 분들은 이때 고향에 돌아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너스 100%를 르바란 기간에 지급하는데 그걸 가지고 고향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일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사시는 분들의 공통적 관심사는 르바란 때 고향에 간 가정부들의 복귀 여부다. 보통 20대 정도의 가정부가 많은데 다시 돌아오면 시집간 딸이 집에 온 것처럼 기뻐하곤 한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밥뿐 아니라 물도. 물론 예외는 있다. 환자와 아이들, 임산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는 이들은 그들의 뿌아사(금식)를 면제받는다. 물론 나중에 이를 보충해야 한다. 금식을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힘들어서 어쩌나 싶어 괜찮은지 물어본다. 예의 긍정적 마인드로 모두가 괜찮다고 한다. 일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 있어도 뿌아사(puasa) 중인 무슬림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중동과 달리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신앙심이 깊지 않아 보이는데 라마단 기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역시 실천을 통해 신앙의 힘이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슬람의 다섯 가지 의무를 5대 기둥이라고 표현한다. 샤하다(Shahadah, 고백) 살라트(Salat, 예배) 자카트(Zakat자선) 사움(Sawm, 단식 *금식월의 이름을 따라 라마단이라고도 하며 인도네시아에서는 뿌아사라는 단어 사용한다.) 핫즈(Hajj, 성지순례)가 그것이다.


샤하다는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뜻의 일종의 신앙고백이라고 볼 수 있는데 테러리스트들이 이 문장을 사용하곤 해서 섬뜩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살라트의 경우 중동의 무슬림에 비해 인도네시아가 조금 더 관대하기는 하다. 공항에서도 보면 카펫을 가지고 다니며 기도시간이 되면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중동 무슬림들을 볼 때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하루 다섯 번 기도 많이들 지키며 웬만한 건물에는 무숄라라고 부르는 기도실이 있다. 므스짓(Mesjid, 모스크)에서 모이는 공동예배 때는 주변에 차를 대기가 쉽지 않다. 이들의 신앙심도 보통은 아닌 것이다. 자카트는 연간 수입의 1/40으로 빈민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움은 이슬람력으로 9월인데 태양력을 기준으로 해마다 며칠씩 기간이 앞으로 당겨지게 된다. 해가 있는 동안만 못 먹지 해가 없는 동안엔 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열량에는 큰 변화가 없는지 힘들어할 뿐 살이 많이 빠지지는 않는다. 핫즈(내 귀에는 하지라고 들린다)의 경우 각 나라마다 쿼터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인구가 많기 때문에 가장 많은 쿼터를 가진다고 한다. 엊그제 부동산 중개사 한 분을 만났는데 몇 년 전 한화로 300만 원쯤 드는 패키지를 이용해서 핫즈를 다녀왔다고 한다. 보통의 노동자들은 한 달에 한화로 50만 원 이하를 받는 경우가 많으니 풍족한 사람들만 지킬 수 있는 의무이다.        


어쨌든 처음 라마단을 보면서 떠올랐던 생각은 유럽의 카니발과 사순절의 전통이었다. 부활절의 큰 축제를 앞둔 기독교인들은 그 전 40일간 영적 훈련을 한다. 바로 사순절이다. 그리고 영성을 위한 절제의 기간인 사순절을 앞두고는 카니발(사육제)을 통해 실컷 고기를 먹는 축제를 벌인다. 카니발의 어원을 "고기여, 안녕!"으로 이해하건, "고기를 금함"으로 이해하건 동일한 것은 금식을 앞두고 미리 실컷 먹어두는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거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 사이에서 인간은 늘 퇴로를 열어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라마단 기간을 생각해보면 이곳의 이슬람교도들은 iftar와 suhur이라고 해서 해가지면 밥을 먹고 해뜨기 전에 또 먹는다. 라마단 기간 호텔들은 꼭 iftar 메뉴를 낸다. 어쨌든 먹는 총량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금욕의 기간을 지나 르바란 연휴가 되면 엄청난 소비가 이루어진다. 보복 소비라고나 할까? 비행기 값이 월등히 비싸지고 몰들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렇게 한 달 넘게 super ego(초자아)를 따르는 삶을 연습하고는 다시 한 주일만에 id(원초아)를 따르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의 종교성을 폄훼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프로이트의 말은 나이가 들수록 공감이 간다는 아내의 말에 나 또한 공감이 간다.         


어쨌든 기독교도로서 이슬람권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각자가 믿는 하나님이 다를 뿐, 종교생활의 방식 자체는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열을 가리기 위해 예민하게 굴려고 하지 말고, 각자가 자신의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아가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사실 고등 종교에서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지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행위에 너무 목숨 걸 필요 또한 없을 것 같다. 인간, 다 거기서 거기니까 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덜 중요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더 중요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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