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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26. 2021

기억이 머무는 공간

좋았든지 그 반대였든지 살면서 계속해서 머릿속맴도는 특정한 공간에 대한 이미지들이 있다.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살던 집도 그렇다. 당시 살고 있던 캐나다의 그 도시에서 집을 얻는 것은 대단히 까다로웠다. 그래서 처음엔 자취방 수준의 집에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리 싸지도 않은 반지하였는데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아내가 꽤나 괴로워했었다. 몇 달을 그렇게  살다가  한국으로 치면 빌라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 2층을 계약해서 들어갔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창고 하나가 딸린 허름한 아파트였다. 좋은 집을 얻을 수 없어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그런 집의 월세도 한화로 150만 원에 근접했었다.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kijiji라는 이름의 온라인 중고사이트에서 식탁과 테이블, 의자, 침대 프레임 등등을 사 모았다. 누가 가구를 주신다고 하면 트럭을 렌트해서 집으로 가지고 오기도 했다. 이케아에 가서 조명도 몇 개 샀다. 그렇게 해서 제법 집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 집에서 1년을 조금 더 살았는데 기간에 비해 참 많은 기억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족히 수십 팀이 놀러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발코니에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값싼 그릴을 하나 가져다 놓고 손님이 오면 거기 나가 늘 고기를 구웠다. 밥을 먹고 나면 동네 야드세일에서 득템 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함께 마셨었다. 그 일 년 동안 한국에서도 가족과 친구까지 참 많은 손님들이 오셔서 함께 머물다 갔다. 시간에 비해 기억할 일들이 많은 것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중고로 산 이케아 의자와 캐나다 특유의 전구색 조명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상당히 답답한 느낌의 조명인데 지나고 보니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늘 그 의자에 앉아서 자지 않고 보채는 딸아이를 안고는 흔들흔들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눕혔다가 아이가 깨면 더 피곤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눕힐 생각을 하지 않고 아이를 재우며 스마트폰을 보곤 했다.  그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육아에 지친 아내를 좀 쉬게 하고는 아이를 안고 거실을 돌아다녔다가 의자에 앉았다가 놀아줬다가 하던 매일의 일들이 "그 은은한 전구색 조명 아래서 아이를 안고 이케아 의자에 앉아있는 과거의 이미지"로 저장되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런 식으로 저장된 각자의 기억들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거다. 아내와 내가 그렇고, 아이들이 그렇다. 과거에 갔던 어딘가를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도 그렇게 모두 다르고, 지금 이곳에서 쌓고 있는 추억들 역시 서로 다르다. 그런데 마치 퍼즐 조각처럼 이 기억들을 맞춰 가다 보면 과거의 일들이 좀 더  많아지고 객관화되곤 한다. 나의 기억이 머무는 공간이 서로의 기억과 합쳐져서 더 확장되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합쳐지는 기억들이 늘 좋은 것들로만 채워져 있어서 확장될수록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다. 좋은 것만 생각해고 기억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 기억이 다른 이들의 기억을 망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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