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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27. 2021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운전을 할 때도 그렇다. 오늘도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데 트럭 한 대가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왔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간신히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트럭 운전자는 환한 얼굴로 웃으며 나에게 손인사를 건넸다. 그저 허탈한 웃음과 함께 가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때론 오토바이가, 가끔은 자동차가 역주행을 한다. 차가 도로를 횡단하는 일도, 후진으로 100미터씩 가는 일도 있다. 물론 법상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위험천만한 운전 습관들이 만들어낸 상황들이다.



어쩌다 보니 한국, 캐나다,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에서 운전을 해보게 됐다. 운전에 대해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캐나다나 미국 일본 같은 나라들은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로마"라는 상징이 적용 가능한 나라들이다. 그 국가들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다. 안전벨트, 카시트, 학교 앞 Stop, 사거리 Stop과 같은 도로 위의 규칙들에 대해서 뉴커머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의 운전문화에 동화되어 간다. 그곳이 "로마"니까 말이다. 아이가 보채서 아내가 잠깐이라도 카시트 끈을 풀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거나,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911에 신고할 준비를 하곤 했었다. 우리를 바바리안 취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곳을 로마와 상반되는 바바리안의 땅처럼 이곳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의 규칙들을 무시하고 이곳의 사람들을 하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보다는 저개발국이라는 우리의 자만심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이라는 게 참 간단하지가 않다. 단지 후진성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동네엔 신호등이 한 개도 없다. 메인도로가 5킬로미터쯤 되는데 그 길에 횡단보도가 하나 있을 뿐이다. 인도도 거의 없다. 도로가엔 소와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가끔은 도로를 횡단하기도 한다. 완전 시골이 아니다. 무려 스타벅스가 두 개나 있는 동네인데도 그렇다. 고속도로를 달려봐도 길이 하도 많이 파여 있어서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냥 파인 정도가 아니라 차가 파손될 정도의 구멍들이다. 차선이 눈앞에서 없어지기도 하고 예고도 없이 코 앞에서 길을 막아놓는 경우도 있다. 로컬 도로로 가면 1.5차선을 두 차선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서로 역주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도로 환경, 바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인프라가 이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나는 주로 물질이 정신에 종속된다고 배우고 믿어왔는데, 가만 보니 사실은 물질에 정신이 종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소위 저개발 국가들에서 경험하는 후진성은 그들의 정신보다는 물질적인 요소의 결핍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으니 정해놓은 규제를 잘 지킬 수 없고 그러다 보니 그것이 다른 사회의 사람들에겐 후진성으로 인식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이곳에 3년 동안 살면서 그런 것들을 전부 후진성으로 판단해 버리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전제를 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실천 가능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도 한다. 아까처럼 운전하다가 짜증이 날만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클랙슨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는 인내의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곳을 "로마"로 인식하고 로마법을 따르려는 내 나름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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