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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28. 2021

기후가 바뀐다는 것

한국인들은 뚜렷한 사계절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사실 다른 많은 나라들에도 사계절이 존재하지만 한국인들은 각각의 계절이 갖는 매력 때문인지 유독 사계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 같다. 나 역시 군대 있을 때를 제외하곤 사계절이 다 좋았다. 눈치울 일만 없다면 각각의 계절들을 만끽하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니 말이다. 


캐나다의 겨울은 때로는 영하 40도 가까이 내려간다. 8월을 제외하면 1년 중 어느 때도 눈을 만날 수 있다. 가끔은 얼어붙은 창문을 열 수가 없어 베란다에 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한 번은 용감하게 보드를 들고 브리티시 콜럼비아에 있는 파노라마 스키장의 중급자 코스에 올라갔다. 상급자 코스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경사도 때문에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 다음에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위에서 바라보는 뷰가 너무 좋아서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는 덥다. 많이 덥다. 건기에는 비가 오지 않으며 덥고 우기에는 비가 많이 오면서 덥다. 부잣집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비가 새는 날도 많다. 열대지방이다 보니 뱀이 많고 모기가 많다. 우기엔 모든 것들이 떠내려간다. 쓰레기통도 떠내려가고 쥐들도 자신들만의 뗏목을 타고 떠다니곤 한다. 가끔 수로와 도로가 섞여서 갈길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이곳의 계절이다. 재미있는 건 야자나무 가로수를 양옆으로 두고 창문을 내린 채 운전을 하면 참 괜찮은 휴양지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는 사실이다. 




기후가 바뀐다는 건 개인의 삶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이다. 그것은 이미 지리와 언어, 문화가 바뀐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먹는 음식이 달라지고 좋아하는 계절과일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는 운동이 바뀌기도 하고 취미 역시 바뀌었을 수 있다. 프랑스 아날 학파(Annales)의 입장처럼 인간은 기후나 지리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과를 캐나다에 있을 때는 체리를 인도네시아에서는 망고스틴을 많이 먹게 된다. 그 과일들을 먹는 게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에 식습관이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환경은 그렇게 상이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누구에게나 상황은 공평하다. 북극과 가까운 캐나다는 계절에 따라 낮시간의 길이가 많이 달라지지만 적도 근처인 인도네시아는 일 년 내내 낮의 길이가 비슷한다. 그러나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다르지 않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도 그렇다. 길에서 곰을 만나느냐, 아니면 코브라를 만나느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와 맞닥뜨리는 건 누구에게나 염려스러운 일이다. 좋지 않은 상황들을 상쇄시키는 좋은 상황들 또한 존재한다. 캐나다에선 스키를 탈만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선 일 년 열두 달 야외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후가 바뀌는 것처럼 상황이 바뀔 때는 그 변화에 우리 자신을 맡겨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건 분명히 착각이다. 평균기온 1도를 낮추지 못하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 큰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저 받아들이는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바뀌면 될 일이다. 돈이 없으면 검소하게 살아가는 훈련을 하고, 머리가 생각보다 좋지 못하면 책상에 조금 더 앉아있어 보는 노력을 하고, 대인관계가 조금 좋지 못한 것 같으면 좀 더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노력을 기울여보면 될 일이다. 나 하나 바뀌는 게 제일 쉽고 빠르게 주변을 변화시키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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