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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29. 2021

과일의 왕, 두리안(Durian)

두리안을 하나 선물 받았다. 난 맛을 영 모르겠는데 아내는 두리안을 참 좋아한다. 취향들이 어찌나 다른지 두리안을 사면 아내는 맛있게 먹고 아들은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한다. 물론 나와 딸아이는 쳐다도 안 본다. 몇 번 먹으면 두리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데 나는 여러 번을 먹어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두리안만 보면 행복해지는 아내가 혼자서 이번 두리안 하나를 다 먹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말로 두리(duri)는 가시이다. an은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쯤 되니까 그 겉모습을 따른 작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보통은 두리안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나 또한 두리안을 차에 싣고 오느라고 냄새가 배서 차창을 한참 동안 열어 두었다. 칼이 잘 안 들어갈 정도로 겉껍질이 딱딱하고 가시가 날카롭다. 떨어지는 두리안에 맞으면 바로 죽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위험한 과일이다. 혈압을 높인다고 해서 고혈압 환자에게 위험하고 술과 같이 먹어도 위험하다고 한다. 어쨌든 나에게 중요한 건 그 모든 상황들과는 별도로 맛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은 냄새 때문에 못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냄새도 큰 상관이 없고 그냥 맛이 없다. 


어제는 누가 두리안을 사주신다고 했다. 길에 트럭을 세워놓고 판다고 했는데, 가보니 트럭이 아니라 밴에서 두리안을 팔고 있었다. 태국의 두리안이 고급이고 인도네시아에선 발리와 수마트라 메단의 두리안이 유명하다. 이번 건 메단에서 왔다고 해서 기분 좋게 들고 왔다. 두리안을 파는 분은 에어컨을 수리하는 기사 에디의 친구이다. 친구들인 건지 길가에 세워둔 밴 주위에 너 넷 명이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리안 장사하는 분이 두리안을 먹기 좋게 잘라서 줬는데 자르는 장면을 찍어도 되는지 물은 다음 찍어서 저장해뒀다. 영상을 본 아내는 드디어 두리안 자르는 방법을 정확히 알았다며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아내는 혼자 먹는 것이 내심 미안했던지 가족들에게 자꾸 먹어보라고 권했다. 나와 딸아이는 당연히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아들은 두리안을 먹는 엄마 옆에 가더니 냄새가 참 좋다며 한 입 달라고 했다. 그런데 입에 넣고는 맛이 없다고 바로 뱉어 버렸다. 아내는 평소에 먹던 것보다 맛있는 거라고 하던데 평소에 먹던 아들이 안 먹는 걸 보니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이곳 사람들은 두리안을 실컷 먹게 해 주는 남자에게 시집가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단다. 이곳의 물가 수준에 비추어 보면 당연히 그렇고, 한국 물가 수준에서 생각해도 두리안은 상당히 비싼 과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그런 소망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다들 두리안의 맛에 반해서 과일의 왕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그 가격에 있어서는 과일의 왕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싼 가격을 주고 두리안을 사 먹으면서 행복한 사람들이 주위에 이렇게나 많으니 말이다. 


인도네시아 여자들도 두리안을 마음껏 먹게 해주는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한다는데 나는 아내에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와 아이들이 두리안을 잘 먹지 않으니 아내는 작은 것을 하나 사려고 할 때도 두리안을 들었다 놨다 한다. 혼자 먹기는 약간 미안하고 아까운 것이다. 그럴 땐 나도 살짝 미안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그저 아내에게 두리안을 마음껏 먹게 해주는 남자가 되어야지, 하고 스스로 파이팅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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