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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Nov 04. 2021

친해지기 힘든 아들

어느 날 아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아빠는 누나랑 팀이잖아."라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딸바보인지라 심장이 싸해졌다. 미안하기도 하고, 티가 나나 싶기도 했다. 사실 엄마한테만 딱 붙어있는 건 본인이면서 불현듯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아서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아빠로서 나름대로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아빠들의 로망은 아들하고 목욕탕을 가는 거라고 하던데 나는 아들과 둘이서 목욕탕을 가본 적도 없다. 한번 온천을 방문했다가 둘이 남탕에 들어간 적이 있긴 한데, 죽어도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해서 탈의실을 서성이다가 밖으로 나왔었다. 아들은 나와 단둘이 뭘 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 


비자 문제로 내가 인도네시아에 한두 달 먼저 들어와 있을 때, 딸은 전화만 하면 아빠가 보고 싶다면서 매일을 울었었다. 그런데 아들은 안 그런다. 아들이 아빠를 전혀 찾지 않는다면서,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를 아내가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알려준 적도 있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서도 아들하고는 통화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갈 때쯤 처음으로 아들이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아들하고 친해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인간은 늘 그런 적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곤 한다. 나도 아들과 친해지는 것에 진심이었고, 그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이제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들을 다시 만나면 정말 많이 놀아줘야지, 하고 싶은 거 같이 꼭 해 줘야지 하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런데 다시 만나니 아니다. 나만 보면 저리 가라고, 쳐다보지 말라고, 말 시키지 말라고 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짜증을 내는 게 재미있고 귀여워서 자꾸 아들의 속을 긁어대기는 한다. 어쨌든 아직 아들과 친해지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재미있는 건 그럴 때마다 딸아이가 옆에 와서 아빠를 안아주며 위로해준다는 사실이다. 동생이 그러는걸 아빠가 이해해 주라며 나를 다독인다. 역시 딸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말씀으로는 결국엔 딸이 엄마와 가까워지고 아들은 아빠와 가까워진다는데 우리는 언제부터일까, 라는 생각을 몇 년째 하기는 한다. 가까워진 듯하면 다시 멀어지는 아들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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