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여섯 가지 종교(이슬람,가톨릭,개신교,힌두교,불교,유교)만을 허가한다. 무교는 공산주의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 KTP라고 부르는, 이들의 주민등록증엔 종교를 기재해야만 하고 결혼을 할 때도 같은 종교 간에만 할 수 있다. (종교가 다를 경우엔 둘 중 한 명이 개종해야 한다.) 다신교인 힌두교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긴 하지만 이들의 유일신에 대한 고백은 일종의 헌법적 선언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답게 이슬람의 영향력은 상당한데, 할랄은 음식뿐 아니라 화장품과 covid-19 백신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제품들에 대한 허가가 한국처럼 식약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종교부의 심의 역시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삶은 생각보다 열려있다. 이슬람 여성 의복의 보수성은 부르카 - 니캅 - 차도르 - 히잡 순인데 인도네시아는 대부분 히잡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곳의 젊은이들이 히잡을 쓰는 것도 부모의 종교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땐 히잡을 벗기도 하고, 급할 땐 후드티의 모자를 덮어쓰기도 한다. 아랍이나 아프간 같은 국가들처럼 그런 것들로 인해 생명이 위협당할 일은 없는 것이다. 남녀 관계도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처럼 억압적이진 않은데, 같이 노는 걸 보면 한국처럼 남녀 간에도 서로 편하고 좋은 친구로 지낸다. 남녀 간에 서로 툭툭 쳐가면서 장난을 치는 걸 보면 죽어가는 외간 남자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아프간의 여성들과는 비교할 수는 없을 정도로 개방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외국인이 별로 없는 지역에 가면 니캅을 착용한 여성분들을 보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나 역시 살짝 긴장이 된다. 눈이라도 잘못 마주쳤다가 무슨 일을 당할까 봐 조심하는 편이다. 최근 원리주의나 극단주의가 강해지고 있는 추세라서 외국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히 개방적인 이슬람 지역이긴 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대도시 지역 교회들이나 관공서 등에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참수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나 또한 최근 2-3년 동안 교회나 성당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뉴스를 몇 번 보기도 했고, 짓고 있는 교회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인도네시아의 종교부 장관이 니캅을 착용하는 것이 꼭 우월한 신앙은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슬람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 종교가 혼재한 국가의 분열을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곳에나 보수와 진보는 존재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에 있어서 주로 보수성과 진보성에 대한 문제는 경전 혹은 종교적 전통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실천하고자 하느냐의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기독교의 어떤 교파는 여자의 목사직을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 혹은 술과 담배가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서 그럴 때도 있다. 심하게 보수적이라는 것은 해오던 것의 어떤 부분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이고 진보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한 것이다. 둘 사이의 합의점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신학적 입장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와보니 이슬람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다. 뉴스에 나올 만한 극단주의자들는 우리가 살아가는 영역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는 엄연히 존재한다. 인도네시아는 보수적이지 않은 이슬람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엔 점점 보수화되는 측면이 있다. 이곳의 무슬림들이 극보수라고 할 수 있는 샤리아 법을 점점 더 따르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인도네시아가 이제는 이슬람 국가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현 대통령 조코 위도도의 정치적 동반자 중 하나였던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도 기독교인으로서 꾸란의 구절을 단순하게 인용했다가 선거에서 패배하고 신성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다 풀려나기도 했다. 개방적인 조직인 무함마디야의 수장이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바하이교의 축일에 축하 메시지를 낸 종교부 장관을 향해서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종교부 장관은 헌법에 여섯 개의 종교가 명시되어 있지만 그것이 다른 종교에 대한 불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헌법적 개념은 종교부 장관의 말이 맞을지라도 사람들의 인식은 무함마디야 수장의 의견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에 대한 관용이 점점 약해지고 보수 이슬람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의 종교지도가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슬람의 주요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중, 대부분은 수니파에 속한다. 같은 수니파 중에서도 다시 여러 조직으로 나뉘는데 그중 유력한 것은 NU(엔우)와 무함마디야이다. NU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조직에 속하는데 둘 중 더 보수적이다. 지역의 율법학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측면이 있다. 수하르토 등이 다스리던 권위주의적 시대에는 종교가 종교 본연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각 종교의 목소리가 커졌고 NU진영의 목소리 또한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되었고 보수성도 짙어진 측면이 있다. 지금의 부통령이 NU의 수장 출신이니 인도네시아 정치계에서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무함마디야 같은 경우 모더니스트 그룹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좀 더 현대적인 시각,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대학처럼 좀 더 학문적인 차원으로 공헌하고자 애쓰고 있으며 종교 간 대화 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개방적인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은 포르투갈이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인도네시아의 말루쿠제도와 티모르섬 등에 자리를 잡으면서 전파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수의 신도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도 수마트라의 바탁족, 보르네오의 다약족, 수마트라 서부의 니아스족 등뿐 아니라 말루쿠의 암본, NTT의 숨바, 서티모르, 서파푸아, 슐라웨시의 마나도와 토라자 등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쪽은 300개가 넘는 종족 집단이 있고 같은 종족은 같은 종교를 가진 경우가 많아, 독일이나 네덜란드 선교사 등이 특정 부족 선교에 의해서 종교지도가 바뀌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한 동네에도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각각의 종족에 따라 다른 교회를 세우기도 한다. 한국의 교회들처럼 보편적 교단 중심의 교회도 있지만 바탁 교회, 암본 교회, 또라자 교회처럼 같은 종족끼리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많다. 개인에 대한 전도는 허용되지 않고 사실상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 종족 전체에 대한 선교들이 성공했던 지역이 개신교 지역, 가톨릭 지역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자카르타 지역으로 넘어온다고 해도 자신들만의 교회 공동체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북미로 이주해서 한인교회를 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슬람이 퍼지기 전 인도네시아의 주요 종교는 불교와 힌두교였는데 지금도 상당히 많은 힌두사원과 불교사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힌두 왕국이 무너지면서 마지막 퇴각한 곳이 발리였기 때문에 지금도 발리의 주요 종교는 힌두교이다. 오늘날의 불교는 주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 유교 역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진다.
어쨌든 그 여섯 개 종교중 90% 가까운 인구는 이슬람을, 7% 정도의 인구는 개신교를 선택했기 때문에 두 종교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종교 간의 대화와 연구, 폭력과 테러와 그 연구 또한 이슬람과 개신교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각 종교가 싸우지 않고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세련됨으로 그것들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공식적으로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아니며, 비교적 소수인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가 인도네시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동부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 또한 종교 간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살아보면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겠지만 이것이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파악한 인도네시아의 종교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