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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Dec 06. 2021

꼬따 뚜아(Kota Tua, Old Town)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꼬따 뚜아는 인도네시아어 오래된 도시(Old Town)라는 의미이다. 자카르타 북부의 구시가 지역의 명칭인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지역이다. 파타힐라 광장을 사이에 두고 카페 바타비아와 인도네시아 역사박물관이 마주하고 있다. 지금의 역사박물관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들은 시청, 법원을 비롯해 식민지배를 위해서 만들어졌던 건물들이. 지금의 역사박물관 지하에는 감옥이 있었는데 우기에 물이 차오르면 감옥 안의 죄수들이 익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갇힌 이들 중엔 독립운동가들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감정이 이입된다. 우리는 일제 30여 년간을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이곳은 무려 350년이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네덜란드의 지배 초기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로 알려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지배권을 행사했으나 VOC의 부도 이후 네덜란드 정부가 직접 지배권을 행사하게 된다.


역사박물관에 들어가 보니 지배의 흔적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왜색을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는데 도네시아 역사박물관엔 식민시대 유물들의 양이 상당하다. 사실 그 시대의 유물들이 빠지면 박물관 전시구성이 어려워 보일 정도로 보이는우리가 일본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는 결이 다르다. 그러고 보면 지배국 혹은 피지배국으로써 식민시대의 역사를 공유한 국가들 간의 관계는 참으로 애증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여전히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 상처를 증오로 만들기도 하고, 진정한 사죄의 기회를 없애 버리기도 한다. 서구 열강들은 동남아시아에 진출해서 남의 땅을 빼앗고는 그걸 지키기 위해 요새를 만들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그랬다. 남의 땅을 빼았기 위해 그들은 서로 전쟁을 하고 조약을 맺었다. 자신들의 요새에 대포를 떡, 하니 배치해 두고는 피식민국의 국민을 잡아들이기 위한 감옥까지 만들다. 슬프게도 긴 시간이 지나 그 대포는 다시 이 지역의 유물로 전시되어 있고 현지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그저 이곳은 이국적인 관광지가 되어버렸. 이러한 역사에 대한 사역시나 충분하 않다.


파타힐라 광장과 그 주변 건물들은 화려함은 덜하지만 유럽 어느 도시의 구시가 광장에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의 전통 그림자 인형극인 와양 박물관과 도자기 박물관 등이 있고 정문 밖으로 나가면 인도네시아 은행 박물관과 만디리은행 박물관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대형 은행들은 국립은행인 경우가 많은데 만디리은행도 그중 하나다. 몇몇 현대적인 전시시설과 카페도 있지만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다. 자전거 대여소와 코스프레를 한 거리의 예술가들도 광장 주변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원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내가 방문했던 지난주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 이곳에 와서 사는 3년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없다. 사실 살던 곳엔 대중교통 자체가 없다. 자차로 이동하거나 그랩 혹은 고젝과 같은 차량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이동할 방법이 없다. 필리핀의 지프니 같은 느낌의, 앙곳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마을버스와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오젝이라는 서비스가 있으나 아내나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대중교통을 한 번은 이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버스를  번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광경들에 신이 났다. 스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차에서 바라보는 것과 다르다. 특히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나가면 바로 몰을 비롯한 목적지로 들어가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는데 골목골목 지나며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풍경들을 보는 것이 색달라서 좋았나 보다.


그러나 신나는 것도 잠시였다, 버스에서 내려 꼬따 뚜아의 정문을 찾느라 꽤 오래 걷게 되었다. 열대지역의 낮시간은 만만하지가 않다. 100미터만 걸어도 햇빛과 습도 때문에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보채는 통에 아내와 나도 지쳐버려서 파타힐라 광장에 들어갔을 땐 이미 가족 모두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언제나 여행은 계획만큼 달콤하지 않다. 불화가 생기기 전에 얼른 카페에 들어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니 다들 진정이 되었다. 다시 심신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후에야 박물관도 둘러보고 광장에서 자전거를 탈 여유도 생겼다.


어쨌든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랩을 불러 숙소로 돌아가면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광장을 여행하면서 어떤 느낌을 가질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긴 시간 수탈의 역사에 대한 사죄의 감정을 더 많이 느낄까? 아니면 자신들이 현재보다 훨씬 넓은 땅을 가졌던, 과거의 시간들을 영광스럽게 기억하며 아쉬워할까? 우리는 어떤가, 나는 어떤가, 하고 생각하다 보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는 족속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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