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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Dec 25. 2021

화산 아래 동네에 살아요

찾다 보 므라삐 화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게 되었다. 바로 얼마 동부 자바의 스메루 화산 분출 큰 피해가 있었던지라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다른 옵션이 많지 않았고 용기는 충분했었기에 므라삐 화산 아래로 집을 정했다. 구글 맵을 열어보니 화산 입구 도로까지 7km가 조금 넘었었다. 산의 크기도 있으니 그 정도면 대피는 가능하겠지, 하고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기라서 이사 온 후에 산책을 할 일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화창한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북쪽으로 연기 구름으로 덮여있는 므라삐 산을 보게 되었다.


백두산보다 이백 미터쯤 높은 산인데 그리 높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가깝다. 그 뒤로 3145미터 높이의 머르바부산보인다. 머르바부 역시 화산이다. 이곳 교민들은 지진이나 화산, 혹은 쓰나미 같은 재해를 많이들 경험하기 때문에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는데 정말 머리 위에 화산을 이고 있으니 느낌이 좀 묘하다. 더군다나 불과 11년 전 화산 분화로 350명 이상이 숨졌었고 최근에도 용암 분출로 화산 기슭의 주민들대피를 한 적도 있던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활화산 중 하나이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인도네시아의 화산 정보를 웹에서 검색해 봤다. Volcano Discovery라는 사이트였는데 인도네시아에 147개의 화산이 있고 그중 76개가 활화산이라고 한다. 살고 있는 중부 자바 지역에는 북쪽으로 보이는 므라삐와 머르바부를 포함해서 12개의 화산이 있다. (위키피디아에는 다른 수치로 정리되어 있다.) 므라삐 화산은 그 위험성과 그로 인한 연구가치로 인해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산 등 다른 15개의 화산들과 함께  Decade Volcanoes프로그램에도 속해 있다. 위키피디아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화산 분화를 1815년의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 탐보라 화산 분화라고 설명하는데 당시의 분화로 약 9만 명이 사망하고 이어지는 기근으로 8만 명이 더 사망했으며 유럽의 기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화산 정보를 찾다 보니 약간 무섭다. 화산으로 관광 온 것이 아니라 화산 아래 사는 것이니 말이다. 살면서 화산은 두 군데를 올라가 봤는데 하나는 필리핀의 따알 화산, 다른 하나는 인도네시아 반둥 근처의 땅꾸반 프라화산이다. 따알은 얼마 전에 크게 분화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몇 년 전 내가 올라가 봤을 때도 정상 바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땅꾸반 프라후는 내가 다녀온 지 얼마 안 돼서 커다란 돌이 날아오고 사람들이 뛰어 도망가는 분화 영상을 아는 분이 보내온 적이 있다. 보통은 분화구 위에서 바라보고는 관광을 마치는데 종종 가이드와 함께 분화구 아래까지 내려가서 분화구의 끓는 물에 달걀을 삶아먹고 올라오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분화 영상을 보고 나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또 화산을 방문하기도 하는 걸 보면 자연재해에 대해 나 또한 많이 무뎌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그 걱정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갈 수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홍수로 길이 끊기고, 수도와 전기가 끊겨도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고 지진과 쓰나미로 여러 희생자가 발생해도 거기서 도망갔던 일들을 무용담처럼 말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환경은 그렇게 사람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곤 하는 것이다. 자연에 승리할 수 없으니 정신승리라도 해야지만 오늘을 살아갈 수 있 것이다.

  

화산을 보며 잠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매일 두려움에 떨며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저 신기하고 아름다운 저 화산을 사진에 남기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화산 구경을 시켜주고  잊기로 했다. 그저 하나의 멋진 산이 머리 위에 있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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