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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01. 2022

한참만에 그림을 꺼냈다

인도네시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땅꾸반 프라후 화산에 갈 일이 있었다. 산 정상에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에는 유화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풍경이나 농사짓는 모습처럼 일상적인 그림들이었다. 이전 반둥의 브라가 거리에서 그림을 사고 싶었으나 아내가 짐이 된다는 이유로 막았었던 기억이 있어서 눈치를 보면서 그림을 하나 사보자고 했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주는데 한 장에 10만 루피아 두장에 15만 루피아라고 했다. 한화로 하면 두 장을 사도 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아내 눈치를 보며 한 장을 골라 집에 오니 역시나 짐이었다. 마땅히 걸 곳도 없고 액자도 없다 보니 신문지에 둘둘 말린 채로 3년 가까운 시간을 옷장 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족자카르타로 이사를 와서 짐 정리를 하다가 보니 말린 신문지가 하나 튀어나왔다. 열어보니 그 그림이다. 둘 중에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하다 하나를 골랐었다. 나는 지금껏 논에서 일하는 농부의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폭포와 시냇물 그림이다.


아내 눈치를 보다가 이삿짐을 쌌던 박스를 잘라서 스테이플러로 그림을 박았다. 그리고 이사 온 집에 있던 타일이 아까워서, 합판에 붙여만든 테이블 위에 얹어 놓았다. 만족스럽다. 몇 천 원짜리 그림만 몇천 원짜리 테이블로 한쪽 벽면이 나름대로 기분 좋게 채워졌으니 말이다.

 

물건이든지 재능이든지 아니면 인간관계이든지 잠자던 것들이 다시 활기차게 깨어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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