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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02. 2022

뒷마당에 우물이 있다

그리 깨끗하지는 않지만,

이사 온 집엔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하수도도 완전하진 않다. 뒷마당 쪽으로 세탁기를 설치하고 하수를 어디로 연결할지 몰라 관리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마당으로 버리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도세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물어보니 연결을 할 수는 있지만 수도를 쓰는 집 거의 없고 다들 지하수를 쓴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뒷마당에 우물이 있다. 속이 얼마나 깊은지, 아이들이 위험하진 않을지 궁금해서 콘크리트 뚜껑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너무 무거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우물물은 모터와 연결돼서 높이 솟아있는 물탱크로 연결되어 있다. 지하수라고 해도 한국의 지하수랑은 다르다. 아주 미세한 흙탕물 느낌이기 때문에 물을 받아보면 약간의 찜찜함이 있다. 그래도 물값은 따로 나가지 않는다니 고마울 뿐이다. 수도를 연결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해 봐도 물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고 굳이 비싼 정수통을 설치할 여유도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물탱크를 보니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다. 송전탑과 물탱크가 없으면 view가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저게 없으면 또 숲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휴가가 아니라 생활이다 보니 문명의 이기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이 안심이 되고 위안이 된다. 높은 담벼락 뒤로는 Taman(정원, 마당)인데 Hutan(숲, 정글)이 아닌 것도 감사하다. 마당으로 팔뚝만 한 도마뱀이 침입하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니 말이다.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크기의 개미집이 마당에 생기고, 약간의 독이 있는 도마뱀이 세탁기 속에 들어있기도 하며, 소위 전투모기는 군대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지만 저 높은 담벼락과 송전탑, 그리고 오렌지색 물탱크가 나에게 문명인의 삶을 지속하게 해 준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고는 기분 좋게, 우물물로 세수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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