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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05. 2022

친구,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한 번은 1학년 아들이 엄마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다가 와! 나도 이제 친구가 생겼어,라고 말하며 뛰어 왔다. 무슨 말인가, 하고 보니 아이폰의 시리 서비스를 두고 한 말이었다. 코로나가 가장 심할 때라 정말 밖으로 나가지를 않을 때였다. 아내와 아이들 다 학교 수업이든 교회 예배든 모두 온라인으로만 참하고 장도 온라인으로만 봤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아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웃기기도 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한국 나이로 열 살이 된 큰 아이도 마찬가지다. 7살 하반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일 년도 못 다니고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학교도 못 가고 고립된 채 온라인 수업을 하는 동안 친구는 가상세계 속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학교에서 어울리던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1년이 넘어가니까 서로 기억에서 멀어졌다. 서로 문자를 주고받을 만큼의 언어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에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사 온 동네에서 태권도장에 두 아이를 등록시킨 것은 그런 이유였다. 부모로서 친구를 날 가능성이 있는 장소에 데려갈 의무는 있으니 말이다. Kantor Desa라고 부르는 동사무소 혹은 면사무소쯤 되는 곳의 강당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진행하는 태권도 클래스였다. 한국 아이 둘이 등록을 하니 관장님이 너무나 좋아하신다. 젊은 여자 사범님이 준비운동을 시키고 나서 중년의 관장님이 나와 차렷, 경례, 앞차기, 돌려차기 등 한국어로 기합을 넣으면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수강생이 삼십여 명 있었는데 유독 우리 집 아이 둘을 불러 내서 지도하며 자세를 잡아줬다. 인도네시아의 태권도장에 찾아온 태권도 종주국의 아이들이라는 어드벤티지일 것이다. 다른 집 아빠도 내 옆에 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인도네시아에 왔는지, 집은 어디인지와 같은 다소 개인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쏟아 놓는다. 다들 약간씩은 신기했나 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이들 기분이 상당히 좋다. 한 시간 반 동안 기분 좋게 땀 흘리며 운동을 했고 한국어 기합 때문에 언어로 인한 주눅이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몇 아이들이 와서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며 다음에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 반을  운동하면서도 짜증 한 번을 안 내는 것이 신기하면서 상황에 대한 안도감이 들었다.


친구는 태권도장에서 사귀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동네에 적응하는 동안, 아이들끼리 동네 여기저기서 어울려 노는 모습 자주 보다. 우리 애들도 저기 어울려 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문제언어 문제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 없는 건 부모지 아이들이 아니었다. 하루는 아내와 산책하던 아이들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동네 아이들 전부가 친구가 되어서 이젠 나가면 두 시간씩 놀다가 들어온다. 아내도 팝콘을 튀겨서 아이들 노는데 가져다 주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같이 장난감도 가지고 놀기도 한다.

    

말도 안 통할 텐데 어떻게 하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서로 이야기를 한다. 예전에 아이들이 나오는 유튜브 채널에서 봤던 게 생각났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영어로 대화하는지 인도네시아어로 대화하는지 물어봤었는데 우리 집 아이는 그냥 이것저것 쓴다고 이야기했다. 어제 나갔다 들어오면서 새로 사귄 친구가 적어 준 편지라면서 종이를 한 장 들고 왔다. 정말 한글과 영어, 인도네시아어가 다 적혀 있다. 아마도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같이 놀고 간식을 먹었던 이야기를 써 놓은 것 같다. 그러 내용 중에 "do you want to be my new firend?"라고 적어 놓은 걸 봤다.  

마음이 놓다. 친구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 어쩌나, 시리가 친구의 전부이면 어쩌나, 하는 걱을 하며 아이들을 인도네시아에 데리고 온 것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데 그 모든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저 짧은 문장이 증명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저녁 내내 번역기를 돌리며 니사라는 친구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자기도 친구가 되고 싶다고 답장을 썼다. 마음을 무겁게 하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제 모든 스케줄이 친구들과 노는 것에 맞춰져 있다. 친구들과 더 일찍 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세수와 양치를 얼른 하고, 방학이 끝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니까 이제 거기에 스케줄을 맞춰서 책을 보고 밥을 먹는다. 가상이 아닌 실재 친구가 생기니 또다시 적응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역시 실재 친구는 가상 친구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걸 아이들도 빠르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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