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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04. 2022

말리오보로에서는 베짝 라이딩을

Yogyakarta, Indonesia

집을 얻기 위해 닷새를 머물렀었고 이사 온 지도 이제 3주가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관광을 하지 못했다. 당장 필요한 일들을 챙기고 불필요한 지출을 피하느라 동네 안에서만 왔다 갔다 했다. 어제는 큰맘 먹고 말리오보로 거리(Jalan Malioboro)에 다녀왔다.


족자카르타(Yogyakarta, Jogjakarta, Jogja) 교육과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하면서도 학군은 가장 좋은 편이고 도시 안에 명문대학도 여럿 있다. 역사도 깊고, 그 때문에 발리에 이어 두 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족자카르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가 바로 말리오보로 거리이다.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 관광객도 거의 없고 현지인만 있기 때문에 이전 분위기와는 같지 않겠지만 원래는 동남아의 여느 유명 관광지처럼 값싼 물가와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젊은 배낭 여행객들이 몰리던 거리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은 이곳의 호스텔에 모여 팀을 짜고 로컬 여행사 등을 수배해서 근처의 유명 관광지들인 보로부두르 불교사원(Borobudur), 쁘람바난 힌두사원(Prambanan), 므라삐 화산(Gn. Merapi) 등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곤 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 박물관과 술탄의 왕궁, 바틱 거리와 쇼핑몰 등이 있어서 주변 관광을 하기도 좋은 곳이다.  


여느 때처럼 그랩으로 차량을 호출했다. 도시 외곽에 살기 때문에 30분 정도 걸려서 말리오보로 거리에 도착했다. 간단히 점식식사를 하고 마차를 타 보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가기 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막상 말리오보로 거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훨씬 활기차고 매력적인 곳이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족 모두의 기분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인도네시아의 도시지역을 다니다 보면 완전히 도시화된 지역은 한국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고 로컬로 들어가면 안전과 위생 확신할 수가 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도시지역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말리오보로 거리에 오니 완전히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거리도 깨끗하고 상점들도 잘 되어 있 자전거 앞에 관광객을 태우는 베짝(Becak)과 마차들이 도로 양옆으로 가득이다 보니 그런 기분일 수밖에 없다. 발리의 우붓(Ubud)처럼 라탄백이 드림캐쳐 등을 파는 가게들도 있고, 깔끔한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들과 약간은 조잡한 물건들을 파는 노점들이 섞여 있상점들 가격이 해서 계획에 없던 약간의 쇼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이 궁금해서 베짝도 탔다. 원래는 마차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려고 했는데 자꾸 자기 걸 타라고 말을 거시는 아저씨가 베짝을 운전하시는 관계로 베짝을 타게 됐다. 가족이 네 명이라 두 대에 나눠 타고 말리오보로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짧게 돌려고 했는데 운전하시는 아저씨가 왕궁과 박물관, 바틱(Batik) 거리 등을 잘 안내해 주셔서 30분 가까이 베짝을 타고 거리를 돌았다. 계속 기념품 가게로 우리를 안내했지만 경험상 일단 상점에 들어간 다음엔 많이 사지 않으면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을걸 알기에 윗동네에 살고 있다고 말하곤 기념품점들을 지나쳐왔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마차와 베짝이 뒤섞여서 일방통행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참 경쾌했다. 걸었으면 가족 모두 예민해졌을 것이고 차를 탔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들이 많았을 텐데 베짝으로 돌아보니 힘도 들지 않고 거리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베짝을 타기 전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딸아이는 말이 불쌍해서 마차를 타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고 아들은 오기 전부터 마차를 탈거라고 신이 나 있었다. 아내와 나는 여러 번 타본 마차보다는 경험해보지 못한 베짝을 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정원을 한참이나 초과 7명이나 되는 가족이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말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베짝을 타는 것이 마차를 타는 것보다 오히려 더 죄송스럽기도 하다. 그러다 엉겁결에 베짝을 타고서 다시 생각해보니 힘이 들고 안 들고는 우리가 주제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겠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을 한 팀이라도 더 태워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 그분들의 삶이니 말이다. 베짝 드라이버 분들은 열심히 그분들의 일을 하는 것이니 트래블러들은 그저 열심히 구경하고 기회가 되면 베짝을 타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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