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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Sep 16. 2016

달콤한 행복



꿈처럼 행복한 한 주가 지나갔다. 신입은 팀장이 전해준 자료를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거나, 팀원이 부르면 달려가 설명 듣고 메모하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아직 할 줄 아는 게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단순 업무 하는 데 보냈지만, 팀원들이 존댓말을 사용해 주어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다.

목요일마다 특별한 간식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신입이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출근 후 이를 본 강 팀장이 모두가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앞으로 간식은 각자 먹고 싶은 사람이 가져오면 되니까 일일이 챙겨서 책상 위에 놓지 않아도 돼요. 그런 거 하려고 우리 팀에 온 거 아니잖아요."

복사 등 모든 잔심부름은 막내가 도맡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신입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신입에게 가장 신경을 많이 써주는 사람은 권 과장이었다. 경력 15년이 넘는 베테랑으로, 회사 내 모든 직원과 알고 지내는 마당발이었다.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 모두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권 과장 자리에서 설명 듣고 있을 때면 사내 메신저가 수시로 울렸다.

띵똥  

- 이번에 새로운 업체 선정하려고 하는데 과장님이 지난번에 진행하셨던 업체 소개 좀 해주세요.

띵똥

- 휴, 저 고민 있어요.. 퇴근하고 시간 좀 내주세요.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였다.


신입이 매장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어깨를 툭 쳤다. 놀라서 돌아보니 매일 아침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는 권 과장이었다. (그때는 직원인 줄 모르고 그냥 단골손님인 줄 알았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커피 마시러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모르겠어요, 그쵸?"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는 권 과장에게 신입은 순간 당황하여 "아, 예..."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단골손님을 민망하게 한 것 같아 내심 신경이 쓰이던 차에 회사 직원인 걸 알게 된 되었다. 친근하게 다가갈 기회를 엿보고 있던 어느 날, 회사 로고가 새겨진 우산을 들고 온 권 과장을 본 신입은 반가운 마음에 먼저 장난을 쳤다.

"우와, 회사 로고 박힌 우산도 있네요. 애사심이 엄청나신가 봐요~"

잠시 후 권 과장이 새 우산을 가져와 내밀었다.  

"여기, 애사심 넘쳐 보이게 해주는 우산 부러워하는 것 같아서요. 남는 거 하나 가져왔어요."

"우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매일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는 권 과장과 친분을 쌓던 중, H팀에서 반가운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권 과장은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신입에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년 전 획기적인 비용절감으로 인사고과 트리플 A를 받았던 이야기, 회사 내 큰 이슈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극적으로 해결했던 상세한 내막, 타 부서 사람들의 과거 이력 등 어디서에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대부분은 권 과장의 영웅담이었는데,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모습에 신이 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퇴근 후 권 과장이 들려주는 경험담은 회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끝낸 뒤에는 충고도 덧붙였다.

"회사 내에서는 누구도 믿으면 안 돼요. 다 신입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듣는 게 좋아요. 지금은 아군이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내 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 명심해요. 나도 믿으면 안 돼요. 너무 순진하게 회사 생활 하는 건 본인한테 좋지 않아요."

신입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들 이렇게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왜 믿지 말라고 하시는 거지? 나쁜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 더 많을 거야. 색안경 끼고 사람을 대하지 말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해야지.'


금요일 오후 6시 반, 팀원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 신입 혼자 남아 있었다. 천천히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감사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회사 생활은 책이나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고달프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어떠한 텃새나 무시도 느끼지 못했다. 신입을 배려해 준 모든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몇 년만에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한 동안 불 꺼진 사무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찰칵.

핸드폰으로 텅 빈 사무실 사진을 찍은 뒤 바탕화면으로 설정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달콤한 행복에 푹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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