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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Sep 17. 2016

월요일


월요일 아침, 팀원 모두 무언가에 쫓기듯 보고서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소란스럽지 않은 분주함 속에 쨍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띵똥

- 매주 월요일은 대표님 보고가 있는 날이라 다들 정신없어요. 겁먹을 필요 없음ㅋㅋ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신입에게 김 주임이 메신저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강 팀장의 최종 컨펌을 받기까지 보고서는 여러 번 수정되었다. 지금까지 본 팀장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충혈된 눈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일에도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 신입은 숨죽여 자료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 팀원 모두 옷걸이에 걸어 둔 정장 재킷을 꺼내 입고 흡사 전쟁터로 나가는 장군 같은 비장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신입은 새로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누군가는 팀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긴장감에 압도되어 미동도 하지 않고 매뉴얼을 읽고 있는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신입은 수화기를 들 때마다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감사합니다. H팀입니다. 대신 받았습니다."

"아, 신입이시죠? 지금 대표님 사무실로 오세요, 빨리요. 뚜-뚜-"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대뜸 대표님 사무실로 오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리다니. 정장 재킷이 없는 신입은 '이게 웬 날벼락'이라는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깍듯하게 인사를 한 뒤 사무실로 들어갔다. 긴 회의 테이블 양쪽으로 팀원이 마주 보고 있었고, 중앙에는 대표가 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매장에서 일할 때는 이름 석 자만 알고 지내던 분을 이렇게 자주 보게 될 줄이야. 검은색, 회색 정장 재킷을 입은 팀원 사이에서 신입 혼자 연분홍 셔츠를 입고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두 손을 꽉 맞잡고 있었다. 신입을 보자마자 대표가 팀원들을 번걸아보며 말을 꺼냈다.

"여자 직원이라고 해서 혼자 사무실에 남도록 한 겁니까? 우리 회사는 그런 회사 아닙니다. 여자라고 해서 커피 타고 심부름하는 그런 회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여자라고 중요한 자리에 제외시키면 되겠습니까?"

인자하지만 단호하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아, 그래서 그런 게 아닌데...'

여자라서, 막내라서 사무실에 혼자 남았던 게 아니기에 대표의 호통을 듣고 있는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녀평등을 외치는 대표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여성비율이 월등히 높은 회사이기 때문에 여성 직원에 대한 대우가 좋은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표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팀원들이 준비한 논리에 허점을 찾아 질문을 던지고 비전을 제시하는 대표의 통찰력에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신입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세포 하나하나에 안테나를 세워 집중하기 위해 안간심을 썼다.


"수고하셨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보고가 큰 잡음 없이 무난히 끝난 듯했다. 사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팀원 모두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신입도 아침부터 짓눌린 압박으로 진이 쭉 빠져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갔다.

보고가 끝나자 강 팀장은 다시 여유를 찾은 듯 농담도 하고 골프 스윙을 날리는 흉내를 내면서 하루 종일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마다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니.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처럼 신입은 벌써부터 돌아오는 월요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1장.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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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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