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 발령받은 후 3일 뒤, 경력직으로 허 과장이 새로 들어왔다. 붙임성 좋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이 인지도도 높고 보수도 괜찮았지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금 회사로 이직했다고 했다. 몇 마디 말을 해보니 전 직장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듯했다. "S사에서는요", "S사 선배 중에는요"라는 말을 반복하여 자발적으로 그만둔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허 과장과 신입이 온 기념으로 회식을 하기로 했다. 회식장소를 알아보아야 하나 눈치를 보며 인터넷 검색창에 '회식장소 추천'을 입력하고 있는데, 2년 동안 막내 역할을 해온 김 주임이 홍대 맛집을 추천했다.
"홍대에 있는 고깃집 어떠세요? 야외에서 캠핑하는 분위기로 고기랑 소시지 구워 먹는 곳인데..."
허 과장이 맞장구를 쳤다.
"아, 거기 제가 가봤는데 분위기도 좋고 맛도 괜찮아요. 제가 위치 잘 아니까 그쪽으로 가시죠."
오늘 처음 발령받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향했다. 신입은 5명으로 늘어난 남자 선배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막내가 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할 수 있는 건 선배들의 빠른 걸음에 뒤처지지 않고 열심을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허 과장이 길을 잘 안다며 앞장서서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오늘 새로 오셨는데 정말 적극적인 분이시네. 본인 환영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데 직접 저렇게 뛰어다니시니. 하하."
김 주임이 추천한 고깃집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이 흐르는 곳 옆에 자리를 잡으니 정말 야외 캠핑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 팀장의 진두지휘 아래 두툼한 고기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소시지가 대령되었고, 권 과장이 집게와 가위를 들고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맛있게 구워지는 고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권 과장이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며 이야기을 시작했다.
"제가 W팀에 있을 때 유 대리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막내였는데 고깃집에서 혼자 반찬을 깨작깨작 먹고 있길래, '고기 안 굽고 뭐 하냐' 하니 마지못해 고기를 굽더라고. 아 그런데 유 대리가 고기를 한껏 위로 집어 올려서 가위질을 하는거예요. 어떻게 됐겠어요? 고기가 조각조각 불판 위로 떨어지면서 촥-촥- 기름이 사방에 튀고 다들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었죠. 보다 못해 제가 가위를 뺏어오니 '앗싸, 성공했어~'라고 하는 겁니다. 하하. 하~ 정말 황당했어요 그때."
권 과장의 실감 나는 설명과 재치 넘치는 상황 묘사에 모두 박장대소했다. 신입도 숨 넘어갈 듯 웃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잠깐, 내가 지금 막내인데 과장님이 고기 굽고 계시잖아? 안 되겠다, 내가 빨리 구워야지.'
"과장님~ 제가 구울게요. 집게하고 가위 주세요."
"어허이, 이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됐어, 내가 한다니까."
권 과장은 끝까지 집게를 내어주지 않았다. 왁자지껄 즐거운 회식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신입은 눈치 없는 막내가 된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센스 있는 직장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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