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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Sep 14. 2016

첫 출근



첫 출근날은 흐릿한 필름 속 사진처럼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침 7시 반, 회사에 도착해 같은 날 발령받은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인사팀장의 안내에 따라 총괄부장, 상무, 대표까지 모두 인사를 드리고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각 팀으로 안내되었다. 신입은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끝자리에 배정을 받았고, 집에서 가져온 사무용품 몇 가지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첫날이니까 다들 점심 같이 먹겠지..?'

신입은 할 일도 없는데 자리에 앉아 쭈뼛쭈뼛 분위기만 살피고 있었다.

"자, 점심 먹으러 갑시다."

권 과장의 한마디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신입은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따라나섰다. 매장에서 일할 때는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 아까워 가까운 분식점이나 매장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로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높게 뻗은 빌딩 숲 사이로 사원증을 목에 걸고 팀원들과 우르르 점심 먹으러 가는 그 순간, 진짜 직장인이 된 것 같다는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박 대리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투정을 시작했다.

"제가 작년 이맘때 H팀 왔을 땐 환영의 의미로 점심 같이 먹고 그런 거 없었잖아요. 여자 직원이 새로 오니까 환영인사도 하고, 사람 차별하면 안 되죠~"

다들 허허 웃으며 듣고 있는데 권 과장이 눈을 흘기며 한마디 했다.

"하 참, 안 하길 뭘 안 해. 박 대리 왔을 때도 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갔었잖아. 그리고, 회사 다닌 지 10년이 넘은 사람이 새로운 부서에 왔다고 환영인사는 무슨 환영인사야."

아침 인사 때부터 두 사람의 투닥거림은 끊이질 않았다. 강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무실에 있으면 두 사람 투닥거리는 거 많이 볼 거예요. 아주 조용할 날이 없어."


새로운 부서에서의 첫 점심은 중국집으로 결정되었다. 신입은 면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팀원들과 똑같이 자장면을 주문했다. 탕수육과 깐풍기까지 나오자 권 과장이 젓가락을 비비며 말했다.

"우리 회사는 더치페이하는 거 알죠? 하하. 그리고 우리는 회식을 자주 안 하기 때문에 팀장님이 가끔 점심 사주시는 것 외에는 모두 각자 계산해요. 오늘은 팀장님이 사주시는 거니까 많이 먹어요."

술을 못할뿐더러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아 출근 전부터 내심 걱정이 컸던 신입에겐 희소식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전화 통화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신입은 컴퓨터에 보안 프로그램을 깔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느라 분주했다.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모두 설치하고 다시 할 일이 없어져 똑같은 메일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때 강 팀장이 신입을 불렀다.

"이쪽으로 와봐요. 조직도 설명해줄 테니까."

신입은 노트와 펜을 들고 팀장 옆자리로 달려갔다. 어느 블로그에서 읽었던 <신입사원이 지켜야 할 기본규칙> 중 '상사가 부르면 무조건 노트와 펜을 들고 간다'라는 문구에 충실한 것이다. 강 팀장은 노란색 메모지 위에 연필로 사각사각 조직도를 그리며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신입은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으나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다. 몸이 나른해지고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혀를 깨물고 눈을 크게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첫날부터 팀장이 이야기하는 데 옆에서 꾸벅 졸아버릴 것 같았다. 허벅지를 꼬집고 눈을 부릅뜨며 겨우 버텨냈다.

"한동안은 사내 규정과 지침 많이 보세요. 3개월 동안은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 팀에 적응하는 시간 가진다고 생각하면 돼요."

신입은 오후 시간 내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규징과 지침을 다운로드하여 읽고, 팀원이 불러서 알려주는 업무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 확인하려고 핸드폰 시계를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팀 분위기 파악할 겨를도 없이 1분 1초가 불편한 하루였다. H팀에는 사수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1대 1로 업무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너무 바빠 보여 질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물론 아는 것이 없어 질문할 내용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뻘쭘하고 어색한 하루였다. 하지만 팀원 간 존댓말을 사용하는 수평적인 분위기, 야근이나 회식이 당연시되지 않는 조직인 것 같아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았다며 위안으로 삼았다. 괜히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앉아있지 말고 얼른 퇴근하라는 강 팀장의 성화에 쫓겨나듯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흐릿한 필름 사진이기에 더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첫 출근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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